[칼럼] 블록체인이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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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블록체인이 나아갈 길
  • 조중환 기자
  • 승인 2020.04.01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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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경쟁력 확보가 블록체인 생태계 확장의 핵심

[글=이진석 오퍼스엠 대표]

이진석 오퍼스엠 대표
이진석 오퍼스엠 대표

2020년 블록체인 업계의 화두는 실용주의(Pragmatism)라고 한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애초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야 말로 블록체인이라는 혁명적인 기술의 최초이자 최고의 응용 사례라고들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비트코인이 먼저 발명되었고, 이후 연구자들이 비트코인에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분리하여 개념화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응용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난 후 재사용될 수 있는 부분을 분리해 솔루션으로 만들거나 프레임워크화하는 일은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므로 아주 특이한 경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실용주의란 ‘암호화폐를 제외한’ 영역에서 블록체인의 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치프레이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이외의 분야에서는 블록체인의 실용성이 입증되지 않았을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위변조가 거의 불가능한 원장’ 이라는 블록체인의 특성은, Eternity Wall처럼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고 훼손되지도 않는 가상의 담벼락에 낙서를 남기는 것과 같은 서비스를 탄생시켰다. Eternity Wall은 트위터와 유사한 서비스지만, 이제는 인류 역사에서 유일한 원본으로서 존재하게 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사용자의 메시지를 저장하도록 구현되어 있다. 이 메시지들은 Eternity Wall을 서비스하는 회사나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암호화폐의 존속 여부와 상관없이, 화석처럼 영원히 남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는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제 폐지가 화두였다. 그에 발맞추어 당시 필자가 몸담았던 블로코라는 회사에서는 인증 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방식을 통해 제1금융권에 레퍼런스를 가지게 되었으며, 추후에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고 로그인을 하거나 결제를 하는 카드회사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국내 대부분의 은행이 참여한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통합 인증서 서비스인 뱅크사인(BankSign)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공인인증서는 서로 다른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사용하려면 각각 따로 등록을 해야 했지만, 뱅크사인은 한 번의 인증서 발급으로 여러 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하나의 예로는 블록체인을 통해 시점 확인 및 진본 확인이 수월해진 전자문서 체계를 들 수 있다. 이미 전자문서에 관한 법률은 디지털 세상에만 존재하는 전자문서라 할지라도 문서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또한 공인전자서명이 되어 있다면 서명이나 날인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지정 받은 공인전자문서센터에 전자문서를 보관하고 공인인증 시점 확인 서비스(TSA)와 연계해 전자문서의 진본 여부 및 시점 확인을 강력하게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디지털화된 문서는 얼마든지 복제되고 위·변조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직도 계약이나 법적인 효력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전자문서는 공인전자문서센터를 이용하거나, 출력해서 ‘원본으로’ 만들어 서명 날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양 극단에 치우쳐 있는 전자문서 시장의 넓은 회색 지대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에서는 이미 현대오토에버 및 블로코, 포시에스와 함께 수십만 장에 달하는 회사 내의 각종 보안서약서를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문서 진본 확인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Paperless’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단순히 개념 검증이나 실험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운영되는 블록체인 응용 모델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한다.

첫째, 암호화폐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및 폭락, 이후에 이어진 침체가 가져다준 강렬한 자극 때문이다. 비록 한때였지만 노력 대비 과도한 투자 유치 금액과 크립토 펀드들의 막대한 펀드 수익률은 블록체인 전체 영역에서 이뤄낸 작지만 견실하고 의미 있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매우 하찮아 보이게 만들었다.

둘째, 블록체인을 ‘분산 원장’ 또는 ‘공유 데이터베이스’라는 지극히 본질적 의미로만 활용하려는 제한된 상상력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블록체인 관련 사업이 겉보기에는 다양해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단순한 활용, 즉 특정한 데이터를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꺼내어 대조해보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블록체인의 근원적 본질을 벗겨 나가다 보면 순수하게 분산 원장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하둡(Hadoop)의 가치와 쓸모를 맵리듀스(MapReduce)가 아니라 하둡 생태계에서 찾듯, 블록체인의 가치도 분산 원장 기반에서 이룩한 암호화폐, 그리고 암호화폐가 동력이 되는 스마트 컨트랙트 등 블록체인 기술 생태계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셋째, 사실은 서버-클라이언트 모델에 불과한 디앱(DApp)이라는 열악한 아키텍처에 구조적으로 갇혀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자체를 새로 만들어 ICO를 하려는 게 아닌 이상, 현재 블록체인 개발자라 함은 특정 플랫폼 기반의 디앱 및 스마트 컨트랙트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를 의미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호출하여 동작하는 디앱은 기존 프로그래밍 영역의 웹 프론트엔드와 거의 다를 것이 없다. 전통적인 웹 기반 클라이언트에게는 웹 표준에 호환되는 API를 제공하는 WAS(웹 애플리케이션 서버)가 필요하다. 디앱 입장에서는 WAS나 스마트 컨트랙트나 크게 다른 상대가 아니다. 블록체인 노드가 수백, 수천 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노드가 동일한 데이터와 로직을 가지고 동일한 반응을 하기 때문에 디앱 입장에서는 단순 서버 클라이언트 모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스마트 컨트랙트에 대응되는 WAS 입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프론트엔드 쪽으로는 디앱에 해당하는 웹 클라이언트만 상대하면 되지만, 백엔드 쪽으로는 서비스의 규모에 따라 얼마든지 거대하고 복잡해질 수 있는 아키텍처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이 준비되어 있다. 이게 바로 수십 년간 체계화되고 발전돼 온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의 힘이다.

WAS의 백엔드 쪽으로는 대학생 혼자서 가벼운 몽고DB(MongoDB)를 재빨리 붙여서 어떤 사람들의 동선 지도 같은 웹 기반 서비스를 경쾌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고, 정부기관, 거대 금융회사, 또는 수억 명의 가입자 및 전 세계 곳곳에 자리잡은 IDC 센터의 지원을 받는 지구적 규모의 거대 회사 서비스를 지탱해 줄 수도 있다.

휴대폰으로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서비스를 향유할 때, 우리는 결코 그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어렵거나 복잡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축적된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의 정수가 총동원되어 그러한 서비스를 뒷받침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현재 블록체인의 디앱 아키텍처에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자료구조에서 조금만 벗어나려 해도 스마트 컨트랙트 뒤에서 성능이나 기능을 보완해 줄 어떠한 연계 모델도 정립된 것이 없다.

 

결국, 엔터프라이즈 영역에서 주도권을 가져 가면서 블록체인 생태계의 풀스택 아키텍처를 주도해 나가는 플랫폼이 모든 응용서비스 영역을 지배하는 승자가 될 것이다. 기술력이 진정한 경쟁력이 될 이 분야에서는 현재의 암호화폐 가격이나 코인마켓캡 순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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