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블록체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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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블록체인인가?
  • 조중환 기자
  • 승인 2020.04.28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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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정답이 아닌,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블록체인

[글=이본용 | 오퍼스엠 기술 총괄 이사(CTO)]

이본용 오퍼스엠 기술 총괄 이사(CTO)
이본용 오퍼스엠 기술 총괄 이사

얼마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많은 국민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치뤄졌다. 코로나 여파로 손소독제와 비닐 장갑, 체온계가 등장하는 재미있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놀란 것 중 하나는 투표 절차의 많은 부분이 체계화되고 전산화되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하면서 많은 고객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에 대해 문의하고 나 또한 호기심에 자료를 찾아보면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록체인 기술이 전자 투표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도 않고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블록체인 기술로 투표의 위·변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선거’의 가치를 실현한다고 할 수는 있다.

지캐시(ZCash)나 모네로(Monero)와 같은 사생활을 보호하는 블록체인은 ‘비밀 선거’의 가치까지도 실현할 수 있지만 투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더리움 입문자에게 제공되는 스마트 컨트랙트 개발 문서에 투표 예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초기에 토큰, 경매, 투표 예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할 만한 곳으로 전자 투표 시스템을 꼽았고, 고객들도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투표에서 경험한 시스템은 블록체인이 없었음에도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 신분증을 스캔하고, 직접 서명을 입력하면 투표용지가 출력되는 과정이 신속하고 편리했다. 아마도 발급된 투표용지는 즉시 집계되어 투표자 수에 반영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가치가 없는 기술인가? 투표는 아직까지 가장 민주적인 의사 결정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부터 총선이나 대선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에 이르기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다. 투표는 이처럼 여러 사람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좋은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높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번 총선만 해도 그 비용이 4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연방 정부 내의 조직에서는 연간 5만 건 이상의 투표가 실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시스템이 높은 보안 수준을 요구하면 그에 따라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블록체인 기술 도입만으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은 큰 비용없이 구축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높은 안전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기존과 같은 투표 시스템에 비용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금융시스템이 빈약한 나라를 위해서 페이스북이 결제 시스템으로 리브라와 같은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블록체인을 도입하고자 하는 고객들과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왜 블록체인을 사용해야 하는가?"였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술 도입의 당위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블록체인 기술을 반드시 도입해야 할 이유를 답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비단 블록체인 기술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만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의 답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의 도입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고, 고객 역시 블록체인이 마케팅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섣부르게 도입을 결정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실익을 얻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블록체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왜 블록체인을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집착하면서 고객에게 기존의 시스템을 퇴화시키자고 요구하는 꼴이 되고 만다.

암호화폐의 거품이 꺼지면서 블록체인 업계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식에서도 블록체인에 대한 환상도 많이 사라지게 됐다. 과거 많은 돈이 몰리면서 블록체인 업계에 발을 들였던 우수한 인재들도 시장이 움츠러들면서 많은 수가 ‘탈블록체인’ 했다. 하지만 시장에 안 좋은 소식만 있었느냐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블록체인 업계에 거품이 사라지면서 생태계가 건전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이제 고객들은 단지 블록체인 타이틀만을 얻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도입하려고 검토하고 있다. 블록체인 업체들도 그럴듯한 백서를 쓰고 암호화폐를 발행하기 보다는 실용적인 기능 개발과 실생활 적용에 몰두하고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파트너들은 프로젝트 재단이 제공하는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운용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사업자로 참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는 "블록체인 기술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크게 보면 블록이나 트랜잭션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 서명이나 영지식과 같은 암호학 기반의 기술과 합의 알고리즘이나 사이드 체인과 같은 분산 처리 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기술을 잘 활용하여 만들어진 결과일 뿐인데 지금 와서 보면 너무 많은 프로젝트가 약간의 차별성을 가진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해 기술 개발을 한 셈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에서 그 기술들을 분리해서 다른 시스템에 적용한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왜’에서 ‘어떻게’로의 전환은 블록체인 업계에도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 기술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하되, 블록체인은 그 도구로서 정당함을 어필해야 한다. 앞서 투표 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블록체인 업체가 투표 시스템을 개발하기에는 그 규모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가 된다. 혹시라도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기존 업체와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존 투표 시스템 업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도화되어 있는 시스템을 신기술 채용이라는 타이틀만으로 더 비용을 들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고 사용해 왔다. 블록체인 기술은 고객에게 다른 기술과 같이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 비트코인이 가격 폭등을 겪으면서 블록체인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을 바탕으로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비트코인보다 진보된 블록체인들과 기술들이 많이 출현했다. 많은 선택지가 생겼고 대부분의 비즈니스 요건에 저마다 적합한 블록체인이 있다. 이제는 그것을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차례다.

시스템을 만들고 사용자들에게 선택을 받아 블록체인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더 투명해져야 한다.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거짓말 뒤에서는 결코 시장이 발전하지 못한다. 암호화폐의 가격 붕괴에 많은 블록체인 업계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제라도 비즈니스와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블록체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바라볼 때이다.

글 이본용 | 오퍼스엠 기술 총괄 이사(CTO)

bylee@opus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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