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 시대의 블록체인
상태바
[칼럼] 코로나19 시대의 블록체인
  • 조중환 기자
  • 승인 2020.06.02 14:0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서의 역할

[글=이진석 오퍼스엠 대표이사]

이진석 오퍼스엠 대표
이진석 오퍼스엠 대표

필자가 처음 블록체인 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하더라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세상을 열광시키고 있었고, 비트코인 가격의 추이를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과 비교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비트코인이 4세기만에 찾아온, 부를 쌓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비트코인으로 촉발된 이 새로운 현상을 통해서 성공의 기회를 찾으려는 개척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비트코인을 능가하는 암호화폐를 만들어 새로운 경제 체계를 만들어 보자는 부류와 비트코인을 가능케 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연구하여 기존에 없던 도구를 만들어 보자는 부류가 그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부류들은 암호화폐를 능가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위해서 무던히도 애써 왔다. 그동안 그럴싸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은 어떻게든 암호화폐와의 연관성을 만들어 ICO에 성공하기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암호화폐 시장의 저력에 한계가 찾아왔고, 알트코인 시장은 오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굳이 암호화폐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집착하지 않은 몇몇 아이디어들이 오히려 살아남아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시장에서 그 성능과 기능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부 기관에서도 이 기술과 연관된 응용 분야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그 적용 범위를 넓히는 추세다. 그 중에서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아이템은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 투표, 자기 주권형 신원 인증(DID), 전자 문서 관리 시스템의 세 가지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은 항상 “그 아이템이 블록체인이 없으면 안되는 아이템인가요?”라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해야만 했다. 아쉽게도 블록체인을 사용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한 아이템이라는 증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저 질문을 굳이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선택했던 이유는 암호화폐를 능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암호화폐라는 응용 분야는 저 질문에 “그렇습니다. 블록체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죠. 그래서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질문하는 사람들도 블록체인의 새로운 응용 분야가 얼마나 파괴적인 아이템인지를 가늠하는 데 으레 저 기준을 적용했던 것이다.

필자는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로서 코로나19 시대라는 사회 현상을 접하면서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앞서 거론한 블록체인 기반의 세 가지 아이템이 시의적절하게 준비되지도, 사용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병 유행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총선이라는 큰 국가 행사를 치르는 특수한 경험을 했다. 큰 선거 때마다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부정 선거 논란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이슈 몰이를 하지 못하고 정리되는 모양새다. 사전 선거에서는 투표권자를 대면 인증한 순간 투표용지가 출력되는 진일보한 방식도 도입됐다. 또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원격 업무가 일상회되었고, 전자 문서 및 전자 계약 서비스 분야에서도 ‘굳이?’에서 ‘기왕이면’으로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도 블록체인의 도움 없이 이 모든 것들을 해냈다. 국가적 규모의 사회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할 이벤트가 블록체인 없이도 성공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자.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사태를 맞아 이정도 수준의 행정 능력을 가진 정부와 이 정도로 이성적이고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국민이라면, 블록체인 없이 동작하는 암호화폐도 문제없이 만들어 내고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는 정부와 국민에게 이 정도 수준의 행정 능력과 행동력이 없더라도, 비슷한 효력을 발휘하는 시스템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아마도 전 세계 거의 모든 해커들은 물론이고 각종 거대 범죄조직, 테러단체 등의 해킹 타깃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기술 기반의 사회 인프라 시스템은 이러한 특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의 아이디어는 그 특성상 다수의 이해 관계자와 사용자가 참여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네트워크를 이룰 때 빛을 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백투더퓨쳐’라는 영화를 보면, 타임머신을 발명한 브라운 박사가 서부 개척 시대의 무더운 사막 도시에 떨어진 후 공장처럼 보이는 초대형 기계를 건설한다. 그 기계는 한참을 요란하게 작업하고는 달랑 각얼음 2개를 내어놓는다. 실제로 최초의 얼음 기계의 효율 역시 영화에 등장하는 얼음 기계처럼 형편없었을 것이다.

반면, 미네소타의 거대한 호수에서 얼음을 채취하던 사업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얼음을 공급했던 거대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제빙 기술의 효율이 어느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당시 얼음 채취 사업가들은 제빙기에 대항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더 많은 얼음을 잘라내는 동선을 연구한다든가, 보다 효율적인 톱을 개발한다든가 하면서 말이다.

만약 최근 코로나19 감염병의 재유행을 발생시킨 이태원 클럽 사건에서 자기 주권형 신원 인증 방식인 DID(블록체인 기반 구현이 필수는 아니지만 궁합이 잘 맞는다)가 실생활에 널리 적용된 상황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방역 공무원들은 이태원 클럽 방문자의 ID 리스트만 확보하고, 개인정보를 세세히 확인할 필요 없이 각 ID의 주인이 검사를 받았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됐을 것이다. 이후 자발적 검사나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 방문자의 ID 리스트를 지자체나 경찰에 보내고, 마찬가지로 주소 등 행정 집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조회하면 지금보다 더 빠르고 간단하게 접촉자들을 추적할 수 있다.

IT 기술 중에는 권한 또는 데이터의 분산, 공유, 투명성 등을 강제하는 성질을 내포하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기존 시스템이 조직력, 행정력을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이디 2020-06-10 09:22:36
저도 다음편 기대하고 있어용 ^^

정의구현 2020-06-08 17:13:44
요즘 블록체인 관련해 연재하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2년전 쯤에 블로코 대표로 발표하시는 것보고 감명 받았었는데... 역시 시대를 읽는 눈이 남다르시네요. 앞으로 좋은글 계속 기대할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