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이태원 참사 후 1년, 우리의 안전 대책은 얼마나 강화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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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이태원 참사 후 1년, 우리의 안전 대책은 얼마나 강화됐을까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3.11.23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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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 159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이른바 이태원 참사라 불리는 이 사고는 핼러윈 축제로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생한 압사 사고였다.

사망자의 대다수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왔던 청년들이라는 점, 사전에 사고 위험성에 대한 경고성 신고 전화가 다수 접수되었다는 점 등이 합쳐져 많은 안타까움을 유발한 사고였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밀집 예상 지역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정비하고 인구 과밀화 지역을 통제하는 등 재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실시한 바 있다. 여기에 압사를 막는데 최적화된 스마트 기술들도 등장했다. 이태원 참사 1년, 재발을 막기 위한 우리의 대책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 대형 압사 사고

사물이나 군중에 의한 압력으로 사망하는 사고를 압사 사고라고 부른다. 인간이 홀로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하는 사물이 많은 도심에서는 사물에 의한 압사 사고를 종종 마주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처럼 좁은 골목에 사람이 허용 범위 이상 몰린다면 군중에 의한 압사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생각보다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압사 사고지만 나름대로 안전 체계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는 현대화 이후 군중에 의한 대규모 압사 사고는 마주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현대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압사 사고가 꽤 빈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60년, 서울역에서는 설날을 이틀 앞두고 귀성길에 오른 군중이 무질서하게 밀집되어 31명이 사망했다. 그 전 해인 1959년에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시민 위안 잔치 도중 소나기를 피하려는 관중 3만 명이 좁은 출입구로 몰리면서 6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5년에는 상주 종합운동장에서 가요 콘서트 공연 시작 전에 출입문에 인파가 몰려 11명이 압사하고 109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도 있었다.

위의 세 사건을 제외하면 한국에서는 이태원 참사 전까지 군중에 의한 대규모 압사 사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몰려드는 인구 규모가 국내보다 훨씬 큰 해외에서는 대규모 압사 사고가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하곤 한다.

당장 올해만 해도 예맨의 수도 사나에서는 91명이 사망하고 322명이 부상당하는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예맨 내전 중에 현지 상인들이 구호 물품을 지원한다는 소식에 수백명의 시민이 몰려든 탓이었다.

2010년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축제 도중 압사 사고가 발생, 347명이 사망하고 755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콘서트가 열리는 코 피치라는 작은 섬에 400만 명이 왕래하면서 사고가 예견되어 있었는데, 경찰이 군중을 통제할 목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하면서 사고가 더욱 커지고 말았다.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그 주변은 성지 순례 기간이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순례객들로 붐비기 때문에 압사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2015년에는 무슬림들이 마귀 돌기둥 의식을 하다가 압사 사고로 2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2005년에는 345명, 1994년에는 270명이 사망했으며 1990년에는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터널에 5천 명이 몰리며 142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압사 사고를 막을 스마트 기술

전 세계적으로 압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국내에서도 이태원 참사라는 최악의 압사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미연에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스마트 기술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지능형 CCTV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촬영된 CCTV 영상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인파 밀집 여부를 확인하고 재난 문자 등을 통해 경고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AI 분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의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고, 위험도를 유관 기관에 자동으로 알려준다.

유사한 기술로 인파 밀집도와 도시 구조, 특성에 따른 지리적 위험도를 분석해 위험이 감지되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휴대전화로 경보를 보내는 솔루션도 있다. 인구 밀집도를 색으로 표현해 관리자가 훨씬 수월하게 위험도를 체크할 수 있고, 군중 속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등의 돌발 사태도 분석해 확인이 가능하다.

지능형 CCTV는 압사 사고를 예방하는 스마트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AI가 인파의 밀집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인, 분석할 수 있는지가 첫 번째 문제이고, 두 번째는 CCTV 영상을 활용하는 탓에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도 있다.

AI의 밀집도 확인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수많은 실증 사업을 통해 해결된 바 있다. AI는 대중의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고 정확하게 밀집도를 분석할 수 있었으며, 이미 설치된 CCTV에서 영상만을 분석하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인텔리빅스가 공개한 'AI 군중안전 솔루션' 모습, 출처: 인텔리빅스]
인텔리빅스가 공개한 'AI 군중안전 솔루션' 모습 [출처: 인텔리빅스]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CCTV 영상을 띄워놓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 앱 위에서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점 형태로 밀집도만을 분석해 관리자는 CCTV 속 사람들의 얼굴을 전혀 확인하지 못한다. 더불어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와는 연동되지 않기 때문에 촬영된 사람의 신분도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인구 밀집도를 분석하는 지능형 CCTV는 이미 홍대와 강남역, 건대입구 등 인구 밀집도가 높은 일부 지역에 설치되어 분포도를 측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지능형 피플 카운팅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재난 안전 시스템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매뉴얼 체계 혁신, 재난안전상황실 강화, 실천적 훈련 확대와 더불어 밀집도 분석이 가능한 지능형 CCTV 909대의 설치가 포함되어 있다. 설치는 올해 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압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재 밀집된 인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발전된 CCTV 기술을 이용하면 밀집된 인구를 확인할 수 있지만 CCTV는 설치 비용이 많이 들고 폭우가 내리는 등 기상 상황에 따라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이에 MIT 미디어 랩에 속해 있는 쿰바톤이라는 혁신 연구소에서는 밀집 인구의 수와 위치, 이동 정도를 분석하기 위해 '아시오토'라는 기술을 고안한 바 있다.

일본어로 발소리를 의미하는 아시오토(あしおと)는 이동 가능한 매트로 매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수를 셀 수 있고 최신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송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3년마다 3천만 명 이상의 힌두교 신자들이 모이는 인도의 쿰 멜라 축제에서 발생하는 압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닐라이 쿨카니라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기술이다. 그는 수많은 실증을 거쳐 이 기술을 완성했고 2015년에 실제로 적용하면서 쿰 멜라 축제에서는 사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안전한 군중 관리 정책 필요

압사를 예방하거나 방지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압사 사고 예방책은 철저한 안전 대책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군중 관리'라고 해서 행사에 참여하는 대규모 그룹의 인원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체계적인 계획과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치안 관련 비영리단체인 국제경찰청협회(IACP)에서 발간하는 군중 관리에 대한 운영 모델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관리 모델'을 기반으로 한 매뉴얼과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관리모델, 출처: 국제경찰장협회 홈페이지]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관리모델[출처: 국제경찰장협회 홈페이지]

미국은 대규모 행사가 계획되어 있으면 과할 정도로 많은 경찰들이 개인 화기로 무장한 채 행사 현장의 질서를 유지한다. 관람객 통행로 곳곳에는 바리케이드를 둬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 혼잡함을 최소화한다. 대규모 축제가 예상된 시기에는 아예 도심에 자동차 진입을 차단하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일본은 1956년, 야히코 신사에 3만 명이 몰려 124명이 사망한 압사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2001년에도 불꽃놀이를 보러 몰려든 인파가 몰려 1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두 사고 이후 일본 경시청은 상세한 현장 지침이 정리된 치안 매뉴얼을 내놨다.

매뉴얼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행사 시에 DJ 폴리스를 출동시킨다는 내용이 있다. DJ 폴리스는 콘서트장의 DJ처럼 지휘차량 위에 올라 서서 인파 상황을 지켜보며 보행자들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앞 사람을 밀면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천천히 이동해라"라는 내용의 스피커 방송을 반복적으로 내보내 군중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한다.

중국은 아예 행사 규모에 제한을 두고 있으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순례객들에게 위치 정보 시스템(GPS)과 개인정보가 저장된 전자팔찌의 착용을 강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사고 재발 방지를 목표로 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주최자가 없거나 불분명한 행사까지 지자체가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안전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지역 축제나 수도권 출퇴근 주요 지하철 등 인파가 밀집하기 쉬운 지역에 대한 안전 관리 강화 지침을 여러 차례 배포했고, 현장 점검도 과거에 비해 1.8배 실시했다. 현장 대응 기관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재난관리체계를 재설정했으며 밀집된 군중의 안전을 위한 각종 예측, 감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인파 사고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도 강화되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빛좋은 개살구라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종합 대책의 이행률이 10월 21일 기준 21.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미 추진을 완료했다고 보고한 항목에서 비슷한 사고가 재발해 문제가 된 사례도 있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실패에서 배움을 얻는다. 하지만 안전은 실패하는 순간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므로 더욱 엄중하게 대비를 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내에서는 수많은 압사 사고 대비책이 마련되었다. 이를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제2, 제3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라면 외양간을 완벽하게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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