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밀어붙이기식 인터넷 규제 위험하다”

2014-03-19     이광재 기자

“쓸데없는 규제는 쳐부술 원수고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암 덩어리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서 불필요한 규제 개혁을 위해 꺼낸 다소 원색적 발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시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새로운 규제를 적용함에 있어 일관된 철학과 원칙을 중시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중론을 모으고 그 절차와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인터넷 시장에 대한 규제 논의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과정과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규제의 당위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로 이용자 후생과 동태적 시장에 대한 혁신을 저해하지 않겠다는 원칙 때문이다.

류민호 미시건주립대 퀠로센터(정보통신정책연구소) 박사는 연구 논문 ‘인터넷 규제 정책과 철학: 미국과 유럽 사례를 중심으로’를 통해 미국과 유럽과 유럽에서 진행돼 온 인터넷 규제에 대한 필요성 논의들을 소개하면서 두 국가 모두 규제 적용에 앞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인터넷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점검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연구 논문은 미국과 유럽은 기존에 통신과 방송에 적용되던 규제들을 무조건적으로 인터넷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사후 규제’, ‘수평 규제’ 등 새로운 규제 프레임 속에서 인터넷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인터넷에 대한 섣부른 규제 적용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논문에서는 미국이 1960년대 전화 단말기 시장에 대한 무규제 원칙으로 시장 혁신이 가능했다는 점을 교훈 삼아 줄곧 인터넷에 대한 정부 개입 및 통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근거로 케나드(Kennard), 제나카우스키(Genachowski), 휠러(Wheeler) 등 FCC 전현직 의장들의 대외 공식석상 발언을 직접 인용해 미국이 지속적으로 ‘인터넷을 결코 규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유럽의 경우는 지난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을 포함한 전자상거래에 대한 사전규제의 필요성을 점검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한 예를 들며 인터넷을 포함한 전기통신 시장(electronic communication market)은 사전규제를 없애고 궁극적으로 자율성에 바탕을 둔 경쟁법 하에서 규제돼야 함을 강조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한편 유럽은 개인의 정보주권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잊혀질 권리를 도입하고 미국 중심의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해 오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미국을 견제하고 유럽의 지역 사업자와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이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규제 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현행 수직적 규제 체계를 수평적 규제 체계로 전환을 완료했다고 연구 논문은 전했다.

수평적 규제 체계로의 전환은 무엇보다도 산업 내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산업의 선순환을 위한 필수적인 규제만을 적용하자는 철학이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또 논문은 유럽에서는 인터넷에 대한 사전규제와 사후규제 중 어느 방식을 채택할지를 놓고 계속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향후 어떤 결론이 내려질 지 예단할 수 없으나 큰 틀에서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사후규제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는 아직 통신과 방송 영역 간 구분을 유지하는 수직적 규제 체계를 고수하고 있으나 점진적으로 통신산업 내 규제를 완화하고 융합 형태의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유보하는 등 수평 규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이미 10여년전부터 수평규제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됐으나 제대로 된 담론 형성과정도 거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점을 지적하며 지금이라도 수평규제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규제 체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다시 시작할 것을 제언했다.

해당 논문은 지난해 10월 미래부가 발표한 ‘인터넷 검색서비스 발전을 위한’ 권고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장기적으로 인터넷 산업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했다.

특히 정작 인터넷 규제 필요성에 대한 이론이나 철학적 근거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들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자칫 일부의 주장에 따라 섣부른 규제를 도입한다면 국내 인터넷 산업의 발전과 혁신성은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논문은 차세대 규제 프레임으로 지금의 사전-사후 규제의 중간적인 수준의 ‘적응 규제(Adaptive regulation)’ 형태로 정리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 분석하며 적응 규제란 처음에는 최소한의 규제들을 설정하고 필요에 따라 점진적인 규제를 검토한다는 개념이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논문은 국내 규제 기관 역시, 그 동안 정부 중심으로 통신망에 대한 규제-진흥으로 IT 강국을 이뤄냈다는 과거의 성공에 매몰돼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망 위에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