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국제 시장, 국내 시장은 여전히 걸음마

핵심 기술 세계 시장 현황 ②

2018-01-03     정환용 기자

[CCTV뉴스=정환용 기자] 전에는 없었던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기능을 가진 장치를 만든다면, 이는 제작자가 핵심 기술(Core Technology)을 보유하게 된다. 자전거를 예로 들면, 자전거를 발명한 사람은 ‘두 개의 바퀴를 연결해 체인으로 동력을 전달하고, 핸들로 조향하는 장치’에 대한 원천기술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임이나 안장, 킥스탠드 등은 부수적인 장치로 비핵심기술(Non-core Technology)에 속한다.

더 나은 경험을 만들어주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산업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향상시켜주는 사물인터넷, 정보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인간을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도와줄 자율주행, 그리고 인간과 기계를 더 가깝게 만들어 줄 인공지능까지. 이것을 꿈에서 현실로 끌어내기 위해선 앞만 보기보다 뒤를 한 번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원동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나아갈 방향도 더 명확히 정할 수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기술의 근원인 핵심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스마트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은 1000개가 넘는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부품은 없고, 액정 디스플레이부터 핵심 프로세서까지 모든 부품은 기계가 만든다. 그리고 부품을 만드는 기계 역시 ‘마더 머신’이라 부르는 공작기계가 만든다. 스마트폰의 핵심인 AP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기계의 도움을 받는데, 프로세서를 만드는 것과 함께 공작기계를 만드는 것도 IT 산업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소비자용 PC 시장을 보면 국내 산업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다. 데스크톱 PC의 본체를 구성하는 하드웨어는 CPU, 메인보드, RAM, 저장장치, 그래픽카드, 파워서플라이, 케이스 등이다. 이 중 국내 업체가 자체 생산하는 항목은 RAM(삼성전자, 하이닉스), 저장장치(HDD는 전무, SSD는 다수), 파워서플라이, 케이스 정도다. 정작 PC 동작에 중요한 요소인 프로세서나 메인보드는 제조하는 기업이 없다. 대부분은 경쟁력과 경제성을 이유로 꼽는데, 기술력을 얘기하는 것은 꺼린다.

원천기술의 부족으로 벌어지는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ICT 산업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원하는 IT 산업 연구개발 예산은 지난 10년간 2배가 늘었고, 2016년 투자금액은 20조 원에 육박한다. ‘IT 산업을 육성하겠다’, ‘소프트웨어 인력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매년 들려오는데, 들리기만 하고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의 R&D 경쟁력이나 IT 산업 경쟁력 순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투자 대비 성과 역시 미미하다. 혹자는 정부의 R&D 지원금을 ‘눈 먼 돈’이라 칭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완성된 솔루션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것 또한 개발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우리나라처럼 기초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모든 산업에 A to Z를 영위하는 건 불가능하다. 평소에 별 생각 없이 당연하듯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핵심 기술들이 적용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기술의 집약체란 걸 알 수 있다. 이미 시장을 선도하며 달리고 있는 분야를 걸음마부터 시작해 따라잡기보다는,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볼 수 있다.

핵심기술, 시장을 이끌어가는 리딩 테크
지난 2015년 교량, 환경, 신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에스코알티에스(ESCO RTS)가 새로운 제조기술을 적용한 도시형 풍력발전시스템 관련 기술의 사업화 보고서를 미래창조과학부에 제출했다. 이 기술의 최종 목표는 복합소재로 만든 나선형 블레이드를 적용한 도시형 소형 풍력발전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계획에서 업체가 내세운 핵심 기술은 ▲나선형 블레이드를 적용한 고효율, 저소음 소형풍력 발전시스템 개발과 제작 기술, 그리고 이 블레이드를 만들기 위한 ▲유리섬유와 탄소섬유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복합체 나선형 블레이드의 개발과 제작 기술 등 2가지다.

여기서 핵심기술의 가치가 정해진다. 어떤 나라나 기업도 이 기술에 관심이 없다면 그뿐이지만, 풍력발전을 필요로 하는 국가와 기업에서 이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활용하기를 원한다면 어떨까. 이 기업은 개런티를 받고 타국, 타 기업에 기술을 판매하는 핵심 기술 보유 기업이 된다. 해당 보고서의 작성자도 국내 시장 현황을 분석하면서 신재생에너지 기술 인증을 받기 어려운 이유로 ‘소형 풍력발전시스템에 대한 원천기술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풍력발전 분야는 덴마크의 베스타스(Vestas Wind Systems)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쟁업체인 GE에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이내 1위 자리를 탈환했고, 2016년에는 연매출 102억 유로를 기록하며 현재까지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풍력발전소의 절반이 넘는 곳에서 베스타스의 풍력 발전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굳이 ICT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런 핵심 기술에 대한 국내 산업계의 인식은 높지 않다.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청양고추는 원래 국내에서 개발돼 재배되던 작물이지만, 해외의 종자 기업에 팔린 뒤로 로열티를 내며 중국에서 가져오는 처지가 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하지 않고 기술만 빼가는 양상이 국가적으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 개발은 고사하고 개발된 기술조차 지켜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국내 기업들은 기술의 개발보다 활용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CPU로 본 기술력의 정도

컴퓨터의 핵심은 ‘연산’이다. 하나의 프로세서에 집적된 트랜지스터가 시스템 전체의 성능을 결정하는데, 연산 속도는 하나의 칩 안에 얼마나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넣는지에 따라 달렸고, 칩의 크기가 제한돼 있는 한계에 다다르기 위해 점점 더 미세한 공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실리콘에서 어떻게 칩이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과 중요도에 대해 알아보자. 유튜브에서 ‘sand to silicon’을 검색하면 인텔이 만든 프로세서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CPU를 구성하는 재료는 모래에서 나온다. 모래의 구성 물질 대부분은 석영(SiO₂)이고, 이를 정제해 순도 99.9999%의 실리콘을 뽑아낸다. 순수 실리콘을 고열로 녹이면서 원통 형태의 잉곳(Ingot)으로 만든다. 완성된 잉곳을 얇게 자르면 칩을 만드는 기반인 웨이퍼가 된다. 대표적인 CPU 제조사 인텔은 지름 300mm 크기의 잉곳을 웨이퍼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도 웨이퍼 제조용 잉곳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몇 곳 있는데, 잉곳 자체를 생산하거나(웅진에너지, 넥솔론, SN 매터리얼, OCI 스페셜티 등) 잉곳의 수율을 높이는 데 필요한 칩 폴리를 만드는(파인에코) 등 다양한 기업들이 실리콘 웨이퍼 생산에 관여하고 있다.

원판 형태의 실리콘 웨이퍼까지의 제조 과정은 일반적이다. 모래에서 웨이퍼를 만들어내는 것은 해당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공장이라면 수월하게 제조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웨이퍼를 초당 수십억 회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도록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칩으로 만드는 일이다. 웨이퍼의 표면에 얇은 PR(Photo Resist) 층을 만들어 회로를 인쇄할 수 있게 만들고, 기판이 디자인된 마스크에 자외선을 쬐어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한다. 실리콘에 이온 주입, 절연층에 구멍 식각, 구리 이온을 침전 등 100가지 이상의 과정을 거쳐 10mm 크기의 칩이 만들어진다.

마스크에 자외선을 쬐어 기판에 회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트랜지스터의 크기와 제조 공정이 결정된다. 현재 프로세서의 기반이 되는 IP(Intellectual Property, 여기서는 반도체설계자산을 뜻한다)는 Arm이 독보적이다. 인텔과 삼성, 엔비디아, 퀄컴, 애플 등 자체 AP를 만드는 기업들 대부분이 Arm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Arm이 설계한 IP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설계자산을 가지고 있는 Arm이 반도체, 프로세서 산업의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데스크톱 CPU를 만드는 제조 공정은 14nm까지 작아졌고, 2018년에 출시될 예정인 인텔 9세대 캐논레이크 프로세서는 14nm 공정보다 2.7배의 트랜지스터를 더 집적할 수 있는 10nm 공정이 적용된다. 14nm 공정으로 만들어진 인텔 코어 i7-6950X 프로세서에는 약 32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있다. 10nm 공정을 위해선 핀 피치가 81%로 줄어들고, 셀의 높이는 68%, 게이트 피치는 78%로 줄어든다.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10나노미터 공정이, 2018년 출시될 인텔의 차세대 프로세서 생산 공정에 적용된다.

웨이퍼 한 장에서 면적에 따라 회로가 인쇄된 칩이 100여 개 정도 만들어진다. 그러나 웨이퍼 위의 모든 칩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검사를 통해 정상 작동하는 칩을 골라 사용하게 된다. 웨이퍼 한 장에 설계하는 칩의 수가 100개, 정상 생산된 칩이 70개라면, 이 칩의 생산 수율인 70%가 된다. 웨이퍼 한 장에 더 많은 칩을 설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하나라도 더 많은 정상 칩이 생산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의 핵심기술
Arm - 반도체 설계자산

1990년대 2G 휴대폰 시절, 거의 모든 휴대폰에는 퀄컴(Qualcomm)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CDMA 방식을 도입한 국내 통신 서비스 덕분이다. 현재는 자사의 AP 스냅드래곤 시리즈가 주력 모델이지만, 1990년 CDMA 기술을 기반으로 이동통신, 기지국, 칩을 만들면서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퀄컴과 인텔을 비롯해 프로세서를 제조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arm의 칩 설계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컴퓨터용 프로세서 뿐 아니라, 매우 적은 전력을 소모하는 TV 리모컨까지 arm의 칩이 사용된다. 이는 arm이 칩 설계 초기부터 성능보다 저전력 설계에 중점을 뒀는데, 2000년대 이후로 모바일 기기가 급증하며 제조업체들이 전력소모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주효했다. 2005년에 이미 모바일 칩을 10억 개 이상 출하하며, 모바일 칩 분야의 후발주자 인텔을 멀찌감치 따돌리게 됐다.

arm의 칩 설계는 대부분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플랫폼인 드라이브 PX 시리즈에는 arm의 코어텍스 A57 코어가 적용돼 있고, 아이폰 8과 X에 적용된 애플의 A11 바이오닉 칩은 arm의 64비트 v8-A 칩 기반으로 제작됐다. 삼성전자가 10nm 공정으로 만들어 갤럭시S8 시리즈에 적용한 엑시노스 9 8895 칩은 v8-a 기반의 A53 칩(CPU)과 Mali-G71 칩(GPU)이 적용됐다. 향후에도 arm의 칩 설계는 대부분의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에 적용될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 - OLED 디스플레이

초창기의 TV는 CRT 브라운관을 사용해 화면이 볼록하고 크기가 상자 형태로 큰 것이 특징이었다. 이것을 책 한 권 두께로 얇게 만든 것이 액정 디스플레이(Liquid Crystal Display, LCD), 그리고 유기 물질의 전기발광 방식을 사용해 자체 발광하는 기술인 유기발광다이오드(Organic Light Emitting Diode, OLED)가 이를 대체했다. 코닥에서 1987년 최초로 OLED 장치를 개발한 이후, LG가 2009년 코닥의 OLED 사업을 인수해 OLED TV와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14년 WRGB(White, Red, Green, Blue) OLED 기술로 특허기술 충무공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55인치 OLED TV를 최초로 양산하며 대영 OLED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세계 LCD 시장을 20% 이상 점유하며, 현재 2만 개가 넘는 관련 특허를 보유해 이 분야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현재 LG디스플레이가 중점 개발하고 있는 것은 60인치 이상의 UHD 해상도 OLED 디스플레이로, 40% 이상의 투과도에 곡률 반경 10cm를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이것이 개발되면 다양한 IT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접목할 수 있어 디스플레이 산업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분 류가 나뉘지 않는 상위 분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업용 디스플레이부터 광고용 키오스크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LG디스플레이의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

 

스트라타시스 - 3D프린터 출력방식

3D프린터는 디지털 데이터를 기초로 활용하는 산업군에서 주목하고 있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대표적인 수단 중 하나다. 3D 출력 방식은 FDM 방식을 비롯해 분말을 레이저로 소결하는 SLS(Selective Laser Sintering), 광경화성 수지를 조형하는 SLA(Stereo Lithography), 분말 소재를 분사하는 3DP(three Dimentinal Printing)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출력 방식과 달리 공통된 사항은 3D 출력물을 위한 디지털 도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3D프린터가 출력하는 여러 방법 중 필라멘트를 고온으로 압출시켜 출력물을 쌓아나가는 압출적층방식(Fused Deposition Modeling, FDM)이 있다. 이 기술은 미국의 3D프린터 제조업체 스트라타시스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고, 지난 2009년 관련 특허가 만료돼 오픈소스가 되면서 여러 업체들이 이를 활용해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FDM 방식은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3D프린터의 출력 방식으로, 상당한 고가였던 과거에 비해 기기와 재료의 가격이 많이 하락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특허기간의 만료로 경쟁 상대는 더 많아졌지만, 전반적인 3D프린터 산업의 발전을 주도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