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 도로 위의 시한폭탄, 급발진

2023-08-18     김민진 기자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차량을 탑승하거나 직접 운전을 한다. 자동차는 현대 문명의 근간으로 교통수단뿐 아니라 물류 운송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활용도가 높고 자주 사용되다 보니 그만큼 관련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운전자의 미숙으로 인한 사고도 있고,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급가속으로 인한 사고 사례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

이른바 '급발진'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또 급발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운전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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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원인과 대처법은?

지난 6월 19일, 수원에서 37년 경력의 택시 기사가 몰던 전기차가 갑자기 급가 해 가로수와 시설물에 연달아 충돌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사고 차량은 출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신차였으며, 택시 기사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유난히 급발진 사고가 많았다. 12월 18일에는 성수대교 북단에서 40년 가까이 운전을 한 택시 기사가 몰던 전기차가 38초간 140km/h 이상의 속도로 질주하는 사고가 있었고, 12월 9일에는 대구에서 급가속한 택시가 14중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 역시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다.

12월 6일에 발생한 사고는 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강원도 강릉시에서 60대 여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굉음과 연기를 내뿜으며 다른 차량과 추돌했고, 그 후에도 600m 가량을 질주하다가 왕복 4차선 도로의 경계석을 들이받아 지하 통로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동승해 있었던 친손자인 11세 어린이가 사망했고, 운전자인 할머니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 외에도 2021년 강화군 저수지, 대구 전기차 택시 사고 역시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였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급발진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며 운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급발진은 단어 뜻 그대로,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량이 급가속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급발진이 무서운 이유는 한번 급발진이 시작된 차량은 쉽게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급발진이 시작되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량이 멈추지 않고 10여 초 만에 120~130km/h의 속도에 도달해 최고 150~160km/h의 속도를 유지하게 된다. 장애물이 많은 도심 속에서 갑자기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를 제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급발진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차량의 엔진과 자동변속기를 제어하는 ECU(전자제어장치)가 고장이 났을 때 급발진이 발생한다는 가설이 있지만, ECU는 시동을 껐다가 다시 시동을 걸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급발진이 ECU의 고장으로 일어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잦은 브레이크 사용으로 인한 압력 서지 현상도 대표적인 급발진 요인이다. 브레이크를 자주 밟으면 압력이 공기흡기장치를 자극하면서 흡입 기관 내의 압력이 기준보다 훨씬 못 미쳐 진공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면 공기 조절 밸브가 파열되거나 강제로 개방되는데, 이때 엔진에 공기와 연료가 과하게 공급되어 출력이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급발진이 자주 일어나는 차종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기차나 디젤차, 가솔린차 등 차종과 급발진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이미 통계로 입증된 바 있다. 전기차에서는 외부 노이즈나 모터 오작동으로, 가솔린차에서는 변속기나 ECU의 이상으로 언제든 급발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단, 급발진을 운전자가 미리 예측해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운전 중 발생한 급발진을 최소한의 피해로 멈추는 방법은 존재한다.

먼저, 급발진 현상이 나타나면 즉시 모든 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여러 번에 나눠서 밟지 말고 온 힘을 다해 한 번에 힘껏 밟아준다. 이후 변속기를 중립으로 놓고, 속도가 줄어들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고속에서의 사이드 브레이크는 균형을 잃게 만드는 원흉이 될 수 있으니 사용을 자제하고, 시동은 가급적 유지한 상태에서 안전한 상황이 되면 꺼주는 게 좋다.

급발진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운전자의 침착한 대응이 중요하다. 급발진이 시작되면 차량을 피하며 이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차량보다 목숨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사람이 없는 쪽을 가드레일에 의도적으로 부딪쳐 속도를 줄여야 한다. 시내에서라면 주차해 있는 차량이나 건물 외벽, 가로수 등과 충돌시켜 차량의 속도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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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급발진 규명

뉴스에서는 지속적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보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 법정에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집계한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 건수는 모두 766건이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매년 30~50건 가까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실제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고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급발진을 규명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도로 위를 달리는 거의 모든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존재하고, ECU에는 차량 속도와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을 기록하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지만, 그 데이터가 굉장히 단편적이기에 이것만으로는 급발진으로 단정 지을 수가 없다.

실제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끝까지 밟은 후에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는 일도 많다. 영상으로는 명백한 급발진 의심 사고지만 주변 영상을 보면 차량의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와 있지 않는 경우다. 더불어 급발진 의심 사고가 항상 고령의 운전자나 초보 운전자 같은 운전에 미숙한 이들을 대상으로만 발생한다는 통계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여기에 다수의 급발진 사고가 보도되면서 급발진이라는 용어가 운전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것도 급발진 의심 사고의 급증과 관계가 있다. 많은 운전자들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를 급발진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5년 대구에서 일어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운전자가 따로 설치한 사제 매트가 가속페달을 눌러 발생한 것이었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급발진 사고로 여겼다.

자동차 회사들은 상술한 내용들을 근거로 자신들의 차량에는 급발진이 없다고 주장한다. 운전자들이 주장하는 급발진 사고는 모두 운전자의 운전 미숙에 따른 사고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법원에서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운전자 측에서 직접 급발진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급발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고 기록 장치(EDR)를 확인해 분석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제동 장치의 작동 여부만 나와 있어 운전자가 실제로 브레이크를 밟았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장치에 기록되는 데이터를 고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EDR 데이터 고도화와 정보공개 의무화와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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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되고 있는 급발진 안전장치는?

현재 국회에는 사고 발생 시 자동차 제작자가 의무적으로 원인을 조사하고 사고에 관한 입증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더불어 국토교통부는 EDR 의무 기록 항목에 제동 압력 센서 값을 포함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실제로 밟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는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법안들이 통과되면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금처럼 운전자가 급발진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규명하게 될 수도 있다.

해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급발진을 인정하지 않지만, 2012년 미국에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급발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있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도요타 차량에서 발생한 급발진과 관련된 소송이었는데, 당시 도요타에서는 페달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ECU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한 민간 소프트웨어 업체가 30초 동안 급발진 재현에 성공하면서 도요타는 패소했고, 1조 2800억 원의 벌금과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을 실행해야 했다.

급발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급발진을 규명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는 법안뿐만 아니라 급발진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으면 주행 기어로 변경되지 않도록 하는 시프트 락이 대표적이다. 2012년 도요타 리콜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의무 장착이 된 브레이크 오버 라이드도 있다. 이 장치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함께 밟을 경우, 가속력을 저하시키는 장치로 스마트 페달이라고 불린다.

아예 급발진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장치도 있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스로틀 밸브에 센서를 달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스로틀밸브가 많이 열려 있으면 급발진으로 판단, 자체적으로 안전 모드로 전환해 최저 RPM으로 유지시켜 주는 장치다.

급발진 방지 장치라고 명명된 이 장치에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각기 다른 불빛으로 점등하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어 운전자가 어떤 페달을 밟고 있는지를 블랙박스로 기록할 수 있다.

급발진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무서운 기능 고장이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피해 보상과 책임 규명과 같은 사고 이후의 대처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주력해야 할 것은 급발진의 원인과 책임 규명에 대한 논의가 아닌, 급발진으로부터 안전한 차량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