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온] 또 다시 참사, 사회 안전은 어디에

대규모 사회 재난을 막기 위한 통합 안전 대책 필요

2022-12-20     곽중희 기자

2022년 대한민국의 가을은 온통 이태원 참사로 인한 상처로 물들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두 번 다시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정부를 비롯한 안전 기관들은 다짐했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 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신종 대형 도시 재난 전망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에는 세월호·이태원 참사와 같이 발생 빈도는 낮지만 한 번 일어나면 큰 인명 피해를 낳는 신종 대형 재난이 늘고 있다. 신종 대형 재난은 급격한 도시화 과정 속에서 생긴 인구 고밀도화, 기술 발전으로 인한 도시 시스템의 복잡화, 상호 의존성 증가 등 요인과 맞물리면서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위협을 주고 있다.

 

짓눌린 158명의 청춘,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 참사 발생

지난 10월 29일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맞는 노마스크 할로윈 시즌을 맞아 이태원 일대에는 약 1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하지만 밤 10시쯤 도시를 뒤덮던 환호성은 순식간에 끔찍한 비명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태원역 앞에 위치한 헤밀톤 호텔 옆의 좁은 내리막 골목에서 수많은 인파가 서로 뒤엉켜 넘어지면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총 158명의 사망자와 196명의 부상자(2022년 11월 22일 기준)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140여 대의 구급차와 함께 서울시 등에서 동원된 소방·경찰 인력 약 848명이 투입됐지만, 현장의 밀집된 인파와 차량 등으로 인해 인원 통제에 제약이 걸리며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아비규환이던 사고 현장을 SNS,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으며 전 세계의 많은 정부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애도했다. 또한 수많은 외신들은 이번 사고가 지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두 번째로 큰 참사라고 보도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이후 발생한 최대 참사라며 사고 발생 다음날인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고, 용산구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지정했다. 또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장례 지원 등을 약속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며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재난 안전 시스템 전면 재검토, 국민 심리 상담 지원 등 사회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빼곡한 인파 속 구멍 난 안전, 문제는 무엇?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이번 참사가 미리 대비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이다. 참사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 사회 재난의 경우, 재난 안전 시스템을 잘 활용한다면 사고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축제장 안전 관리 매뉴얼(행정안전부), 공연장·경기장 안전 사고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경찰청) 등 기존에 있던 안전 관리 매뉴얼과 첨단 기술을 통해 구축된 재난안전통신망을 잘 활용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2021년 경찰청이 개정한 ‘공연장·경기장 안전 사고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에는 다중 밀집 인파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대응 방안은 현장 초동 조치 및 구조·구급 활동을 위한 교통 통제, 사고 현장 및 병원·시신 안치소 질서 유지 등 8가지다. 이처럼 밀집 인파 행사에 대한 유사 매뉴얼이 있었던 만큼 사전 대응 의지만 있었다면 매뉴얼을 참고해서라도 사고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번 사태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규모 재난을 막기 위해 마련된 재난안전통신망도 무용지물이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접속 기관 및 통신·통화 내역을 보면, 재난안전통신망으로 상황이 보고된 건 사고 최초 신고가 접수된 10월 29일 22시 15분으로부터 1시간 26분이 지난 23시 41분이었다. 사고 발생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용산구, 서울경찰청, 경찰청, 행정안전부 등 기관에 내용이 접수됐다.

또한 실질적으로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해 이뤄진 소통도 극히 일부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경찰은 경찰끼리, 소방은 소방끼리 자체 통신망으로 상황을 전파했을 뿐 소방과 경찰, 경찰과 지자체 등 기관 간의 유기적인 상황 전파는 거의 없었다. 기관별 활용 현황(10월 29일 0시~30일 24시)에 따르면, 경찰청은 통신망 단말기 1536대로 8862초, 소방청은 단말기 123대로 1326초, 의료 부문은 단말기 11대로 120초가량 각각 소통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월 4일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태원 참사 중앙재난안전관리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은 버튼만 누르면 유관 기관 간 통화를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에는 그 부분이 작동이 잘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도 “재난안전통신망이 이런 재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것을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경찰, 용산구, 행정안전부 등의 관련 기관의 늦장 대응과 보고 체계 미흡도 사고 대응의 실패 지점으로 계속 지목되고 있다.

한편,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사고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영상 등 많은 정보가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피해자와 시민들에 대한 개인정보 침해 문제도 제기됐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사고 현장의 모습이 노출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시민의 개인정보 보호와 신변 안전을 위해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와 논의해 삭제·비공개 등 가능한 조치를 모두 취하겠다고 했다.

 

정부, 사회 안전 시스템 전면 재정비 돌입

이태원 참사로 무너진 사회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회 안전 관리를 책임지는 정부는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7일 열린 국가재난시스템 관련 회의에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재난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부족한 매뉴얼을 보충하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먼저 정부는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안전 관리 미흡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군중 관리 방안 들을 포함한 국가안전시스템 혁신 방안을 마련한다. 여기에는 참사에서 지적 받았던 지자체의 안전 관리 의무를 규정하는 법령 개정, 관련 지침 및 매뉴얼 마련, 그리고 과학 기술을 활용한 밀집도 분석 등이 포함된다.

특히 이번 이태원 참사의 원인인 압사 사고의 위협을 알리는 ‘현장 인파 관리 시스템’도 구축한다. 아울러 주최자가 없는 지역 축제, 행사를 안전 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지침서도 개정한다.

이 외에도 ▲교통수단 인파 관리 개선 방안(국토교통부) ▲긴급구조시스템 진단 및 상호 연계 방안(경찰청·소방청) ▲응급 의료 대응 체계 개선(복지부) ▲경기장 및 공연장 인파 관리 개선 방안(문화체육관광부) ▲학교 교육을 통한 안전 의식 제고 방안(교육부) 등도 진행될 예정이다.

시민 단체 등 일각에서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안전 불감증 등 안전 무시 관행을 근절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안전 의식 고취를 위한 대책이 민간과 기업을 중심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10월 31일 성명을 통해 “재난은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재난 안전 교육과 훈련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안전 불감증 근절 대책을 위해 국민재난안전총연합회는 ‘재난안전보안관’이라는 민간 차원의 안전 문화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안전 점검·교육 등 지역 사회 안전 문화 운동을 주도할 예정이다.

 

드론·지능형 CCTV 등 첨단 기술, 사회 안전에 제대로 활용해야

일각에서는 향후 드론, 지능형 CCTV 등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구축·활용해 이번과 같은 참사를 예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구가 밀집한 곳에서 실시간으로 사고를 예측할 수 있는 대표 기술로는 지능형 CCTV와 드론이 있다. 지능형 CCTV는 인공지능(AI)을 통해 밀집 현장에 사람이 얼마나 모여 있는지, 위험한 움직임은 없는지 등 위협 징후를 포착해 관제센터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지능형 CCTV는 경찰·소방의 인력 배치에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실시간 인파 규모를 파악해 관리가 필요한 구간에 인력을 집중 배치하는 등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인파 관리에 지능형 CCTV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 도쿄 도시마구의 재해 대책에 따르면, 주요 역사에 설치된 50여 대의 CCTV가 인파 병목 현상 등을 실시간을 점검해 지자체의 재해대책본부에 알려준다.

영상 분석 기업 인텔리빅스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밀집 인파 현장의 경우, 안전 관리를 위한 ‘군중 안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단순히 CCTV의 영상을 육안으로 확인해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비전 AI 기술 등 상황을 더 능동적으로 분석해 관리해야 한다. 특히 군중 안전 관리 솔루션은 AI 기술과 연계해 군중의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관련 기관과 연계해 재난 상황을 전파할 수 있어, 압사 사고를 예방하는데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드론의 경우 이미 광장, 스포츠 경기장, 공연장 등 인파가 밀집하는 곳에서 안전 감시를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드론은 높은 상공에서 수많은 인파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이번과 같은 사태에서는 더욱 활용성이 좋다.

미국은 2018년부터 추락 사고 예방을 위해 건설 사업장 감독에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는 드론을 산업 재해 예방에 사용한 예시지만 실시간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곳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통제에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유윤열 한국드론개발협회 대표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부도 언급했듯 밀집 인파 사고 관리에 드론을 활용하는 시도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드론을 통해 상공에서 실시간으로 인원을 감시하거나, 드론에  시민들에게 사전에 주의 경고를 줄 수 있는 고출력 및 고성능 스피커를 부착, 사전에 위험 안내 방송을 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회 재난 예방을 위한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는 시도도 이어질 전망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사회 재난 예방에 잘 활용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2015년부터 약 1000억 원을 투입해 국토 전체를 디지털화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2018년에는 싱가포르 전역의 모든 도로, 구조물, 인구 분포 등을 현실과 유사하게 구성해 유무형의 데이터를 3D 가상 환경으로 구현하는 ‘버추얼 싱가포르(Virtial Singarore)’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버추얼 싱가포르는 비상사태 시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안전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3D시뮬레이션으로 특정 지역이나 건물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안전 사고를 미리 파악해 대피 경로를 확보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도 약 260억 원을 투자해 디지털 트윈를 활용한 안전 관리 등 관련 실증 사업이 추진 중이기는 하나, 밀집 인파 등을 분석해 사고에 대비하는 사업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사업은 대다수 수해·산업 재해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우석 ETRI 재난안전지능화융합센터장은 “이번 참사의 경우, 디지털 트윈의 3단계인 예측형 트윈 기술을 활용했다면 사고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실제로 밀집 인파 사고와 관련해 군중 난류로 인한 압사 모델 등 관련 연구가 해외 연구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밀집 군중 이동 모델을 만약 디지털 트윈에 접목시킨다면, 공간 정보 상에서 어느 정도의 인원이 들어왔을 때 어떤 흐름이 생기고, 또 인원이 몇 명 이상 되면 어떤 사고가 생길 수 있는지 등 분석을 통해 압사 사고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태원이라면 이태원 내에서도 어느 구역이 위험한지 위험도를 분석해 해당 구간에 경찰을 좀 더 투입하는 등 대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밀집 인파 대응에만 초점을 맞춘 디지털 트윈 기술 연구는 아직까지 없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관련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문화와 구조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복잡해진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재난의 양상도 그만큼 복잡해 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는 언제 어디서는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사회 안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국민들도 항상 나에게 재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생활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처럼 사회 전체의 노력이 이뤄졌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