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온] 중대재해처벌법 1년, 우리의 산업 안전은?

여전한 산재 피해, 법 개정 공방 가열

2022-12-06     곽중희 기자

산업 재해(이하, 산재) 왕국,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오명 중 하나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5년 이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로 인한 사망률 1위를 21번 기록, 2005년 이후에도 꾸준히 2~3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산재를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는 산재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고민했고, 그 결과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시작부터 탈이 많았던 중대재해처벌법, 현황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중대 산재와 중대 시민 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 또는 법인을 처벌해 중대 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산재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 재해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2명 이상 부상자가 발생할 시 기업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린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후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의 뚜렷한 처벌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또한 법의 내용을 두고서도 각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에게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처리 현황(2022년 9월 기준)’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156건의 사건 중 86%에 해당하는 133건은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3건이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사건 접수에서 송치까지 소요된 평균 기간은 115일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로 알려진 사건은 삼표산업에서 발생한 채석장 매몰 사고다. 1월 29일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만에 발생해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휴대폰 내 증거 인멸 시도 등으로 수사에 난항을 겪어 4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6월 13일 고용노동부는 사고와 관련해 수사를 마무리하고 양주사업소 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삼표산업 경영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추후 혐의를 입증해 사건을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첫 기소된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발생한 이 사건은 창원에 위치한 두성산업 소속 근로자들이 사용하던 세척제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돼 독성 간염에 걸린 사안에 대해 검찰이 사업주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지난 8월 열린 2차 공판이 후 두성산업 측이 법원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법률심판을 신청을 하면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두성산업 변호인 측은 위헌법률신청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와 제6조 제2항 등이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 경영책임자 등이 부담하는 형사 책임이 범죄 예방 효과 등에 비춰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 균형성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해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잠정 중단된다. 또한 이번 위헌 신청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시행 후 처음으로 8달 만에 위헌 여부를 다투게 됐다.

사실, 중대재해처벌법은 입법 초기부터 법의 내용과 실효성을 두고 말이 많았다.

먼저, 징역형 등 강한 처벌 규정에 비해 의무 사항의 내용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각 산업 현장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 점검 의무 사항이 기록돼 있다. 그런데 중대 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건설·제조업의 경우 넓은 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법이 명시한 안전 의무 사항을 경영책임자가 일일이 점검하기 힘들며 게다가 점검해야 하는 의무 사항의 범위도 넓어 실질적인 이행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법의 적용 대상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산재 사고가 나오는 곳은 대다수 50명 미만 사업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산재 사고 사망자 828명 중 약 80%에 해당하는 668명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법 적용이 시급한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 1월 27일이 되어서야 법이 적용된다. 노동계는 이런 점을 감안해 50명 미만 사업장의 적용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법이 규정하는 질병의 기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물리적 상해뿐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나 만성 질환, 업무상 과로 등 정신적 질환으로 인한 재해도 중대 산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법 시행 후에도 사망 사고 여전, 효과 아직 미미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된 후 우리의 산업 현장은 더 안전해 졌을까? 관련 조사에 따르면, 아직까지 산재 사망 예방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누적 재해 조사 대상 사망 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총 510명(4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02명(492건)보다 늘었다.

2022년 3분기까지(1월~9월)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가 나온 업종은 건설업으로, 총 253명(243건)이 사망했다. 다음으로는 제조업 143명(136건), 기타업종 68명(65건) 순이다.

산재가 가장 빈번한 건설업에서는 3일에 한 명 꼴로 사망자가 나왔다. 가장 높은 사망 요인은 추락이었다. 올해 첫 건설업 사망 사고도 추락사였다. 1월 7일 전남 나주시 삼영동에 위치한 영산고등학교 도서관 개선 공사 현장에서 벽체 철거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이동식 조립 말비계에 오르던 중 옆으로 떨어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IS, Construction Safety Management Integrated Information)’에 따르면, 올 3분기에는 건설 사고로 총 59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24명이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건설 현장 내 충돌로 인한 사고도 많았다. 특히 올해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철도 건설 현장에서 직원 4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지난 11월 5일 밤 경기 의왕시 오봉역에서 차량 정리 작업을 하던 코레일 직원이 뒤에서 오는 열차를 보지 못한 채 치이고 말았다. 이 외에도 2명은 열차 충돌로, 1명은 끼임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토교통부는 연이어 사망 사고를 낸 코레일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건설업 다음으로 사고가 많이 발생한 업종은 제조업이다. 최근 파장을 일으킨 ‘SPC 제빵 공장 끼임 사고’도 제조업 현장에서 일어났다. 지난 10월 15일 새벽 경기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SPC 의 자회사인 SPL의 평택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샌드위치의 원료를 섞는 기계에 끼어 숨졌다.

제조업에서 끼임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례는 이전부터 많이 있었다. 2021년 11월에는 경남 양산시의 한 식료품 제조업체에서, 2020년 2월 충남 예산군의 한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체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10월 27일 교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7~2021)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 자동차 신품 부품 제조업, 식료품 제조업 등 5개 고위험 업종,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28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중 끼임으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았다.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주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SPC 제빵 공장 사고가 불거진 후 고용노동부는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식품 제조업체 1297곳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절반(49.6%)에 해당하는 업체에서 안전 조치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SPC 제빵 공장 사고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 10월 18일 SPL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고용노동부는 SPL 공장이 2인 1조 작업 등 내부 지침을 준수했는지,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췄는지, 그동안 사고 예방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해 왔는지 등을 중점으로 조사하고 있다.

또한 올해 산재 사고 현황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인 사업장(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법이 적용된 50인 이상 사업장은 사망자가 202명으로 전년 대비 24명 늘었는데, 법이 적용되지 않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사망자가 308명으로 전년 대비 16명 감소했다.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산재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판단하기 어렵다. 법 시행도 채 1년이 되지 않았고 실제 처벌이 이뤄진 사례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에서는 자료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법의 효과에 대해 분석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023년 예산 및 기금 운용 계획 안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안전 조치 관련 예산을 2021년 측정했던 8조 8844억 원에서 8160억 원 추가한 9조 7004억 원으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첫 개정 논의 격돌, 절충안 빨리 마련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 등 각계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위한 움직임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9월 1일 노사 및 전문가들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장에서는 법의 시행령상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명확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포함한 경영계는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모호성으로 산업 현장의 혼란이 심각하기에 ▲직업성 질병 범위 축소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특정 ▲‘필요한’, ‘충실한’ 등의 모호한 표현 삭제 ▲경영책임자 개념 구체화 등 입법 보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 확보는 해외 입법례 등을 고려했을 때 명확성이 낮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착이 필요한 시기에 개정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또한 만약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직업성 질병의 범위 확대(뇌·심혈관계 질환 등)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포괄적 규정 위험성 평가 시 종사자의 참여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관계자는 “지난 토론 결과,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고, 양측에서 바라는 바가 시행령 개정을 넘어 법률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점도 다수 있다. 이에 자료를 바탕으로 법의 시행령만 개정할지, 아니면 법률의 내용 자체를 바꿔야 할지 전면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실 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목표는 산업 안전에 대한 경영주와 안전 책임자의 책임을 높여 재해를 감소시키는데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중대 재해 사건의 판례가 필요한데, 현재 경영계는 법이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재판 결과가 나온 사례도 없는데 법령이 모호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법 자체를 뒤 흔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의 의무 사항이 모호하다는 의견도 타당하지 않다. 호주, 캐나다 등 해외에도 유사한 법이 있는데 이 법들은 상식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포괄적인 규정만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이들보다 더 명확한 의무 사항을 가지고 있다.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사항이 시행령을 포함, 총 4개 조항에 들어가 있고, 그 안에서 또 세부적으로 보면 15개 이상이 기록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총 관계자는 “사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실제 구속까지 이뤄지는 형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의무 사항이 더욱 세밀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법의 의무 사항을 보면, 안전보건관리비와 도급 용역 기간을 도급인 보고 알아서 결정하라는 등 구체적인 가이드가 없다. 이런 경우 검찰 등 수사 기관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어 만약 재판이 이뤄지는 경영주 입장에서는 불리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향후 각 계의 의견들을 반영해 중대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위임 범위를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제로라는 비장한 꿈을 안고 출범했다. 하지만 시행 약 1년이 지난 지금도 법의 실효성을 놓고 각계의 입장 차이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산재 감소라는 법의 취지다. 정부는 하루 빨리 노동계와 경영계가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제시하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 방안을 따라 실질적으로 산재를 줄여 나가도록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