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노동자 휴게실 설치 의무화, 쟁점은?

영세 기업은 울상, 노동계는 반발, 재개정 움직임도

2022-10-12     곽중희 기자

2019년 8월 9일 서울대학교에서 한 60대 청소 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창문과 냉난방기 하나 없는 열악한 휴게 시설의 모습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계에서는 근로자의 편안한 휴식과 안전을 위한 휴게 시설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지난 8월 18일부터는 모든 사업장이 휴게 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특히 상시 근로자를 20인 이상 고용했거나 7개 직종 근로자(전화상담원, 돌봄서비스 종사원, 텔레마케터, 배달원, 청소원·환경미화원, 아파트 경비원, 건물경비원)를 2인 이상 고용한 사업장(전체 10인 이상)에는 휴게 시설을 설치하지 않을 시 최대 1500만 원, 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시에는 최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휴게 시설은 사업 종류 및 상시 근로자 수 등 기준에 맞도록 크기, 위치, 온도, 조명 등을 법에서 정한 대로 조성해야 한다.

 

휴게 시설, 재해 예방 위해 꼭 필요

휴게 시설은 근로자가 편안한 휴식을 통해 최적의 상태로 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생명 안전과 연관이 깊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산안법의 개정은 의미가 있다.

‘건설 노동자 휴게 시설에 대한 안전 보건 규정 준수 조사(Yakubu, Bakr 2012)’ 등 휴게 시설과 산업 안전의 연관성을 다룬 여러 연구에 따르면, 휴게 시설의 여부와 상태는 근로 현장에서의 재해 감소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휴게 시설의 여부, 운영 방식, 질, 위생 상태는 근로 현장에서의 재해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2017년 시행한 관련 연구에 따르면, 휴게 시설 설치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사업장에서 얻게 되는 편익은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개정안 시행 당시 “작업장에 설치하는 휴게 시설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여 업무상 사고나 질병 등 산업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이다. 휴게 시설 의무화 제도 시행을 통해 현장의 열악한 휴게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휴게 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영계, 규모·업종 등 여건 맞게 적용해야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영계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휴게 시설이 필요한 건 알지만 현재 여건에서 당장 휴게 시설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당장 휴게 시설을 설치하기 쉽지 않은 영세 기업의 경우, 법에 명시된 약 6.6㎡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기에 부담이 크다. 이에 영세 사업주들은 코로나19 이후 운영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휴게 시설 마련을 강요하고 과태료까지 내라는 것은 과한 처사이자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이런 상황을 우려해 정부가 여건이 열악한 50인 미만 사업장에 휴게 시설 설치에 예산 223억 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내긴 했지만, 20인 미만인 사업장만 해도 약 252만 1628개(고용노동부 자료)에 달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다.

 

 

노동계, 적용 대상 적어 실효성 떨어져

노동계도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과태료 부과 대상인 사업장은 얼마 되지 않아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8월 1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정부가 휴게 시설 의무화 개정안을 휴게 시설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오히려 설치 의무 면제권을 주기 위한 법안으로 바꿔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개정된 산안법은 휴게 시설 설치·관리 기준 미준수 시 과태료 부과 대상을 상시근로자 20명 이상 사업장(공사 금액 20억 원 이상 공사 현장)과 7개 취약 직종 노동자를 2명 이상 고용한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인 이상 사업장 수는 약 15만 9246개로 전체 사업장 268만 874개 중 약 5.9%에 지나지 않아, 실제로 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은 소수다.

또한 민주노총이 전국 13개 지역 산업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산업 단지 내 20인 미만 사업장 중 휴게 시설이 없는 곳이 58%로 파악됐다. 실제로 휴게 시설이 필요한 사업장에는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 적용 범위-지원책 넓힌 개정안 발의

이에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 등 14인은 7월 25일 휴게 시설 의무화 대상을 20인 미만 사업장으로 넓히고 중소 기업의 휴게실 설치 비용을 늘이는 산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설치 의무화 대상에 20인 미만 사업장 포함 ▲1인당 최소 면적 기준 확대 ▲남녀 휴게실 분리 ▲영세 기업의 설치 비용 지원책 마련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김영주 의원실 관계자는 “8월 18일 시행된 산안법은 기존에 발의됐던 법에 비해 범위가 많이 축소됐다. 이에 법의 적용 범위를 다시 넓히고 기존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다시 개정안을 발의했다. 휴게실을 한 개만 두면 되는 점, 1인당 면적이 좁은 점 등을 봤을 때 노동자들이 편안히 쉬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단순히 과태료만 부과하는 것은 영세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지원책을 늘리는 내용도 포함했다. 최근 정부가 재정 긴축에 들어갔는데 이로 인해 꼭 필요한 휴게 시설 설치 지원에 대한 예산도 축소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이에 새롭게 법안을 발의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직업건강증진팀 나상명 사무관은 이번 쟁점에 대해 “휴게실 설치 의무화에는 노사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양측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사업장에 휴게실 설치 의무를 바로 적용하면 가장 좋겠지만, 또 여건이 열악한 사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합리적인 지점이 어디인지를 계속 고민하던 중에 산안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와 선진국의 사례를 반영하게 됐다.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따르면, 20인 이상 사업장부터 안전 보건 관리 담당자를 지정하게 돼 있다. 그래서 과태료 부과 기준을 20인 이상으로 먼저 설정했다.

또한 20인 미만 사업장도 휴게 시설 설치가 필요한 건 맞지만 당장 부담이 되는 점을 고려해 청소미화원, 텔레마케터 등 환경이 더 열악한 사업장에 먼저 설치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산업 단지의 경우 공간 부족 문제 등을 고려해 공동 휴게 시설 설치 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추후에 20인 이상 사업장부터 설치가 많이 이뤄지면, 순차적으로 20인 이하도 설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휴게실 설치 의무화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 시행된 법으로 양측 입장에 따라 노사 간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차후 양측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계를 밟아가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