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메타버스 속 성범죄,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아바타 성희롱부터 유사 성행위까지, 법적 한계로 처벌도 어려워

2022-04-11     곽중희 기자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메타버스 내에서의 범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중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메타버스 성범죄다.

2021년 12월 경찰청이 발표한 ‘치안 전망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요 몇 년간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 주 이용층인 1020세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인 성범죄로는 ▲성희롱 발언 ▲아바타 대상 유사 성행위 강요 ▲아바타 대한 스토킹 등이 있다.

 

아바타가 성희롱을? 도대체 어떻길래

전 세계 약 3억 명(2022년 3월 기준)이 이용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는 지난해 5월 한 10대 학생이 남성 아바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큰 논란이 됐다. 남성 아바타는 여성 아바타에게 “가슴 만질래, 속옷 벗어봐”라고 말하거나 여성 아바타 앞에서 특정한 포즈를 취함으로 마치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당시 여성 아바타의 유저인 10대 학생은 해당 사건으로 큰 충격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버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계정을 개설해 제페토에 접속한 결과, 한 남성 아바타가 다른 여성 아바타에게 접근해 “몇 살이야?, 고1이면 키스는 해봤어?, 어디까지 해봤어?” 등의 성적인 질문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남성 아바타는 여성 아바타가 도망가자, 그를 쫓아가거나 또 다른 여성 아바타를 찾아다녔다. 상대적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10대와 청소년들에게는 자칫하면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4월 3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메타버스 VR챗 근황’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여기에는 VR챗(메타버스 소셜 플랫폼)에서 한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의 특정 부위를 만지거나, 치마를 입은 여성 아바타의 치마를 들추는 등의 성희롱과 유사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이미지가 게시돼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메타버스 내 성범죄가 앞으로 더 큰 사회 문제로 발전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VR 기술과 장비의 발전 등으로 메타버스가 점점 더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안에서 겪는 성범죄 피해의 실제감도 현실과 유사해져 심각한 인격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벌 규정도 모호한 메타버스 성범죄

게다가 메타버스 내 성범죄는 처벌 규정이 모호하고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등 대응에 한계가 있어 곧바로 대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내 성범죄는 현행법상으로 통신매체이용음란죄에 해당하지만, 가상 아바타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과 성추행에 딱 맞게 적용되는 법은 없으며, 실제 처벌이 이뤄진다고 해도 경미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나온 지도 얼마되지 않았고 신기술과 관련된 범죄에는 현행법이 적용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한 법적인 처벌이 가능하다 해도 용의자의 신원과 소속 국가에 따라 수사 진행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특히 국내가 아닌 외국 기반의 플랫폼이라면 수사 착수는 더욱 복잡해진다. 아울러 메타버스 내에서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대부분 적시에 신고가 이뤄지지 않고 보호자가 피해 사실을 알기도 쉽지 않아 피해가 숨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처벌 규정이 마련되기까지 기다리기 보다 사전 예방 차원에서의 대책을 수립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성범죄 없는 메타버스 세계를 위한 노력

실제로 정부와 일부 기업들은 메타버스 내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라 그 정도가 미미하지만, 메타버스 플랫폼이 점점 늘어날수록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들도 하나씩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제페토는 AI 모니터링을 통해 성적인 단어를 금칙어로 지정해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제페토에서 성적인 단어를 입력하면 “##, ***” 등으로 표기된다. 하지만 단어 사이에 숫자를 몇 개 끼워 넣거나, 단어를 조금만 바꾸는 등 편법을 사용하면 쉽게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은 규제의 허점이기도 하다. 제페토 측은 계속된 모니터링과 이용자 신고를 통해 플랫폼 내 성범죄 예방을 위한 규정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메타는 지난 4월 4일 자사의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와 호라이즌 베뉴에서 아바타 사이의 거리를 1.2m로 제한하는 ‘퍼스널 바운더리’ 기능을 도입했다. 이는 호라이즌 시리즈의 베타 테스트 기간 중 아바타를 대상으로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마련됐다. 메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바타 간의 접촉을 악수나 하이파이브 등으로 제한했다.

 

법무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전문 위원회는 최근 메타버스 등 신종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권고안에는 기술 발전에 따라 성적 인격권 침해 범죄의 장소가 메타버스 등 신종 인터넷 공간으로 이동·확대되고 있다는 추세를 반영해 원격 성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 위원회는 법규의 부재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으며, 성범죄의 양상이 현실에서 메타버스 등 신종 가상 공간으로, 이전의 신체적 접촉에서 비신체적 접촉인 원격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어, 기존의 법을 넘어선 성적 인격권의 관점에서의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제페토에 ‘청소년상담 1388’을 알리기 위한 온라인 홍보 창구 운영을 시작했다. 메타버스 내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범죄 등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을 위한 상담 창구를 운영한다는 취지다. 여성가족부는 앞으로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들을 대상으로 상담 서비스를 계속해서 구축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메타버스 내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디지털 성범죄 전문가에 따르면, 메타버스 내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메타버스 등 신종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의 양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상황에 노출될 시 곧바로 빠져나오거나 신고를 하는 등의 예방 의식을 제고할 수 있는 관련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나와 타인에 대한 개인정보 전송 금지 ▲타인 동의 없이 사진, 영상을 찍거나 보내지 않기 ▲잘 모르는 사람이 개인정보를 묻거나 만남을 요구하면 단호히 거절하고 전문 기관에 신고하기 등의 디지털 성범죄의 기본 예방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개개인의 예방 수칙 실천만으로도 많은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메타버스 속에 기생하는 성범죄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은 곧 도래할 메타버스 세상의 치안을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