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21대 대선 투표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가능할까?

온라인 투표 시스템, 기술 충분하나 사회적 합의는 아직

2022-03-15     곽중희 기자

20대 대선 최대의 오점으로 남은 사전 투표, 무엇이 문제였나? 

대망의 20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은 여러 가지로 혼란이 많았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사전투표소에서의 관리 미흡 사태는 대선이 끝난 지금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5일 코로나19 확진·격리자 대상 사전 투표 현장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선거구별 투표함을 1개만 설치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151조 2항에 따라, 부족한 투표함을 따로 설치하지 못한 채 사무 선거원이 기표된 용지를 임시 보관함에 담아 투표함으로 옮기는 ‘대리 투입’ 방식이 활용됐다. 이 과정에서 확진·격리자에게 기표 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다는 사전 공지는 없었다. 또한 현장에는 준비된 임시 보관함 없이, 투표 용지가 담긴 비닐 봉투, 플라스틱 박스, 상자, 쇼핑백 등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더 나아가 이미 특정 후보에 기표된 용지가 유권자들에게 배부되거나 사전 투표에 참여할 확진·격리자 수를 예측하지 못해 대기인원이 몰리면서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헌법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투표 용지 관리 미흡 ▲투표 봉투 및 보관함 방치 ▲투표 용지 대리 전달 등이 직접·비밀 투표의 원칙에 위배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선거의 사전 투표는 코로나19 확진·격리자를 따로 관리해야 하는 점 때문에 그만큼 통제가 어려운 것도 있었다. 특히 확진·격리자의 수와 동선 예측이 쉽지 않았고, 이 점이 선관위와 확진·격리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혼란이 가중됐다. 이는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기존의 종이 투표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활용한 투표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온라인 투표, 기술 충분하지만 아직은 시범 도입만 

이번 대선 시기 중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온라인 투표도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해당 질문에는 ‘님, 무슨 소리 하는 거임?’, ‘어디 나라에서 온 거요?’와 같은 어이가 없다는 장난 식의 댓글들이 이어졌다. 결국 작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이는 결코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 사실 온라인 투표 시스템(K-Voting)은 이미 국내에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선관위는 이미 2013년부터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도입해 정당 당 대표 경선, 학생회장 선거, 아파트 동 대표 선거 등에 활용 중이다. 또한 지난 2018년에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투표 과정에서의 위‧변조를 막고 결과 검증을 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는 선거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기존에 우리가 하고 있는 투표는 ‘투표소 투표 방식’으로 크게 종이 투표와 전자 투표로 나뉜다. 종이 투표는 기표된 용지를 투표지 분류기와 육안으로 두 차례 검수해 결과를 집계하는 방식이다. 전자 투표(DRE: Direct Recording Electronic)는 유권자가 직접 투표 값을 전자 시스템에 입력하면 시스템이 이를 서버에 기록하고 서버 내에서 결과가 집계되는 방식이다. 미국과 인도, 일본이 일부 공직자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 투표소 투표 방식은 온라인 투표에 비해 시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유권자를 직접 인증하고 투표의 기밀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온라인 투표는 투표소 투표 방식과 달리 원격이 가능한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을 사용한다. 간편하고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며, 투표 현장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투표 도입을 위해서는 유권자 인증과 투표 결과 신뢰를 위한 기술적 보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공직자 선거에 적용할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공직자 선거에 도입할 계획은 없다. 시범 운영 중이고 적용을 단계적으로 넓혀가야 한다. 안전한 투표 시스템과 관련 법안 등 시스템 외의 인프라도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대선이나 총선 등 공직자 선거에는 아직 온라인 투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적용한 다른 선거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투표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한국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은 이미 어느 정도의 기술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관계자는 “지난 2018년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시범 사업을 추진한 결과, 충분한 기술적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작년에도 사업을 진행했다. 올해도 공공 분야 확산 사업으로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 선정돼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직자 선거의 온라인 투표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각종 보고서를 보면 이미 기술에 있어서는 도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나왔다. 하지만 기술 외에 국민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적용하지 못하는 점이 크다. 이번 대선만 봐도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국민의 신뢰와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사회적 합의’

한국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은 이미 기술적 수준을 갖추었다. 남은 건 온라인 투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모든 국민이 온라인 투표 방식에 동의하고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각지대 없이 누구나 온라인 투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미 온라인 투표를 시행 중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 선거에 온라인 투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로는 에스토니아가 있다. 에스토니아는 잘 갖춰진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온라인 투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빠르게 도출해냈다. 

에스토니아는 2007년 세계 최초로 총선에 온라인 투표를 도입했는데 여기까지의 과정이 주목할 만하다. 에스토니아는 1998년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전자정부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2001년 TO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모든 법안의 초안과 개정안을 공개했다. 에스토니아 국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열람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에스토니아 정부는 온라인 투표 정책에 대한 친숙함과 신뢰도를 높였다.

또한 에스토니아 정부는 국민의 80% 이상이 ‘온라인 신분증(eID)’을 소지하도록 지원했다. 온라인 신분증에는 전자서명 인증서와 보안을 위한 비밀번호를 포함해 국민들이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믿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유도했다. 특히 비밀투표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투표 기간 동안은 유권자가 투표 내용을 수정할 수 있게 하고, 최종 투표만 결과에 반영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또한 에스토니아 정부는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투표율 상승 ▲개표 시간 단축 ▲선거 관리인 실수 차단 등 온라인 투표의 장점을 계속해서 홍보했다. 이런 노력들로 에스토니아는 온라인 투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물론, 이를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내 상황에 맞는 여러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성 확보다. 이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이미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적용 중인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입증이 돼 가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국민이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알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홍보를 위한 소통과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다음은 개인 인증에 대한 조작을 방지해야 한다. 이는 인증서나 생체 인증 등 현재 활용 중인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타의에 의해 원치 않는 투표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에 혹시 모를 상황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유사 상황 발생 시 관련자를 처벌하고 투표 결과를 즉각 수정할 수 있는 법적 제도 등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사각지대에 있는 고령 세대와 소외 계층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디지털 기기 조작이 어려운 집단은 온라인 투표를 꺼릴 가능성이 높고, 갑작스러운 투표 방식의 변화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들을 너무 멀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난 2012년 선관위가 진행한 정당 후보 선출 관련 전자 투표 여부 조사를 보면, 90% 이상이 공직자 선거 내 전자 투표 도입을 찬성했다. 이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먼저 선관위가 주도해서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선행하고, 이후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투표 결과의 대한 신뢰까지 확보한다면, 머지않아 한국에도 온라인 투표로 대선을 치르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