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메타버스의 미래

한때의 유행이 아닌 현실 세계를 보완할 미래 기술

2022-01-10     석주원 기자

[글=노규남 | 위블 CTO]
bardroh@weable.ai

누군가는 인터넷 붐이 100년에 한 번 오는 기회라고 얘기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모바일 붐이 그 100년의 기회 후에 다시 온 매우 드문 기회로 앞으로 우리 생에 이런 이벤트는 다시없을 거라 단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새로운 기술 발전(대표적으로 딥러닝)을 보면 이런 전망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오만한 예측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산업혁명이 그 후 거의 10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20세기 말에 시작된 디지털 혁명도 그에 못지않게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실제로 현재 진행형이다. 20세기 말의 닷컴 붐이 그랬고, 애플의 아이폰으로 촉발한 모바일 붐이 그랬으며 최근에는 NFT와 암호화폐, 블록체인과 AI, 클라우드 등 현세대 최신 기술들을 모두 망라하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웹-모바일을 잇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왜 지금 메타버스인가

사실 메타버스라는 것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며 십수 년간 사용하던 온라인 서비스의 확장과 연장의 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라는 얘기를 들으면 대개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제페토 같은 샌드박스 게임들을 맨 처음에 떠올리겠지만 사실 메타버스라는 용어 자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어서 모호하다.

2007년 발표된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자료에서는 ▲가상적으로 강화된 현실과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가상 공간이 융합한 것을 대략적인 메타버스로 정의하고 있다. 즉 IT기술을 이용하여 현실을 강화하거나(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 현실과 별개인 가상의 세계를 구축(Virtual Worlds, 가상 세계)하거나 혹은 이 두 가지를 융합한 형태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메타버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은 증강된 현실을 통해 물리 세계에서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도 있으며, 현실과 유리된 가상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또 이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면서 결합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ASF

이런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현재 서비스 중인 모든 MMORPG는 가상 세계를 구축했으니 메타버스라 할 수 있고, 구글 어스는 현실을 시뮬레이션 한다는 측면에서 메타버스의 범주에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서비스다. 그런데 왜 지금 메타버스가 갑자기 각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먼저,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와 업무 환경의 요구가 높아지고 수용도가 올라감에 따라 이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통제가 길어지면서 교육, 업무, 문화 등 전 분야에서 비대면으로 기존의 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도구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메타버스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일괄 서비스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화상 회의나 온라인 협업 툴 등 특정 목적에 맞는 비대면 서비스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실의 물리 세계에 준하는 정도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도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억눌린 대면 서비스 욕구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서비스를 가급적 현실에 가깝게 확장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웹과 모바일 이후의 성장 동력을 찾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의 메타버스 업체인 로블록스가 상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는데,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로 대표되는 샌드박스형 게임들은 메타버스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실제 많은 매출을 발생시킴으로써 사업으로서의 메타버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실증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공 사례를 본 많은 기업들이 근래 앞다투어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를 표방하고 나서고 있지만 아직 각 기업마다 무엇을 메타버스라고 말하는지도 모호한 상태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양적 팽창 이후에 옥석을 가리는 과정을 거쳐 의미 있는 서비스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메타버스가 초기 논의되었을 때는 이를 지지하기 위한 기술적 기반이 매우 약했으나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어느 정도 이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7년이면 아직 LTE가 보급되기도 이전의 시절로, 무선망은 3G에 머물러 있었고 최대 속도는 14.4Mbps에 불과했다. CPU는 인텔 코어2 듀오가 가장 최신이었으며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AWS의 EC2가 등장한 것도 2006년이다. GPU를 범용 연산에 사용하기 위한 CUDA도 2006년에 발표된 기술이므로 당시는 메타버스라는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기반이 너무 빈약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적인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대역과 초저지연을 지원하는 네트워크, 초고용량의 서버 인프라, 그리고 음성·영상 등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AI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각각 6G, 클라우드, 초거대 AI의 출현으로 점점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6G 네트워크는 스펙상 최대 1Tbps까지의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사람 한 명 분량의 홀로그램을 전송하기 위해서는 5Tbps 수준의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두 번의 표준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우리는 실제 현실에 맞먹는 수준의 홀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는 연결성을 확보하게 된다.

또 이런 대용량 트래픽을 전송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서버 인프라가 필요한데, 이미 우리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거의 무제한 확장이 가능한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GPU와 TPU 등 전용 가속 장치를 통해 구현되는 고성능 AI 모델은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가상 현실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가상 공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외에도 지금보다 훨씬 방대하고 정교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AI를 포함해 더욱 많은 개발 역량이 요구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가상 세계와 사람의 감각을 연결해 주는 좀더 효율적인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현재의 VR기기들도 많은 발전을 했지만 시각과 청각만으로 제한된 인터페이스의 한계는 여전히 뚜렷하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뇌와 가상 세계를 직접 연결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으나 이는 윤리적, 의학적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장치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격이나 접근성 측면에서도 일반인이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수준이 되어야 진정한 메타버스의 대중화가 가능해진다. 이런 이슈 때문에 인터페이스의 극적인 진화가 있지 않으면 앞으로 가능한 메타버스 경험은 오큘러스 리프트나 홀로렌즈 정도가 최선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6G

 

메타버스는 현실 공간의 확장

메타버스의 궁극적인 형태인 가상 세계(Virtual Worlds)가 구현되어 현실을 일부 대체하거나 보완하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 NFT나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 세계에서의 아이템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지금보다 더 정교한 렌더링 기술과 물리 엔진 구현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콘텐츠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AI 기술이 필수로 사용되어야 하며, 높은 렌더링 부하를 감당하기 위해 GPU의 성능은 지금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 이상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백엔드의 인프라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부하를 감당해야 하는데 이는 역시 기술의 발전으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일부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요소로써 가상 현실은 의미가 있으며 그 안에서 일부 경제 활동까지 영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를 통해 확인되어 가고 있다. 거울 세계(Mirror Worlds) 또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하여 실제 환경을 체험하거나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선 교육, 또는 설치해야 할 장비들의 문제점을 미리 확인하는 일은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법의 일부에 불과하다. 증강 현실을 통해 작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시각·청각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런 식으로 디지털 세계가 현실 세계와 융합되면 우리는 더 많은 일들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메타버스는 기존의 IT 서비스와 다를 것이 없으며 단순히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말 바꾸기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금의 메타버스 붐은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서비스가 힘들어진 것에 따른 영향일 뿐이며,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거품처럼 사라질 유행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비대면이 필수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환경들을 가상 세계에서 체험해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타버스가 현실을 대체하는 경쟁재가 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물리 세계를 보완하여 우리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데 그 진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메타버스가 발전할 단초가 만들어진 건 분명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메타버스의 유효 기간도 종료된다는 건 아니다. 현실의 대면 서비스에 대한 욕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와 별개로 메타버스가 사람들에게 주는 효용도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상황과 관계없이 메타버스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