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온] 시행 앞둔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쟁점은 무엇?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법안의 미래는?

2022-01-06     석주원 기자

지난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산업 재해 청문회를 개최해 쿠팡, 씨제이대한통운, 현대건설,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 대표 9명을 증인으로 소환했다. 우리나라의 산업 재해 사망률은 매우 높은 편으로, 청문회에 소환된 9개 기업은 최근 5년간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사업장들이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산업 재해 발생에 대한 질책과 사고 방지 예방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촉구했지만, 형식적인 답변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말로만 하는 질타보다는 청문회에 앞서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아마도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배경

일반적으로 진보 진영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수 진영은 경영계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성향이 강하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역시 진보 진영을 표방하는 만큼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노동 관련 공약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등 노동 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축소 및 차별 해소, 일자리 창출과 노동 시간 단축 등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안에는 산업 안전과 관련한 직접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이것이 산업 안전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인식 수준이다.

산업 안전은 산업 재해가 터져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사회적 관심을 받기 어렵다. 또 관심을 받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는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 재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데다, 일부 위험한 현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도 자신에게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불감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물론 작업장의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기업의 인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소극적 방치 속에서 산업 재해는 꾸준히 발생하고, 이로 인한 사망자 역시 줄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처음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 산업 안전과 보건 관련한 조항 10개를 포함해 형식적으로나마 산업 안전 제도의 구색을 갖췄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등 위험 산업군이 늘어나면서 산업 재해 발생 빈도와 그 피해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산업 안전 법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를 토대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별도의 독립된 법으로 제정됐고, 1987년에는 한국산업안전공단(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설립해 산업 안전과 관련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후 우리나라는 산업 재해와 관련한 판결을 산업안전보건법에 기반을 두고 처리해 왔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하지 않고 관리 감독이 소홀한 사업장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더욱이 피해자 인정과 피해 보상안도 미흡한 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던 노동자 친화 정책 방향과 달리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오히려 더 증가하면서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를 타개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정부는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 발생 등 중대 산업 재해에 대한 책임을 현장 관리·감독자가 아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직접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내용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을 살펴보려면 먼저 중대재해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의하는 중대재해는 크게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이 중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 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중 하나의 항목에 해당하는 재해를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 이용 시설 또는 공중 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 상의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발생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환자 10명 이상 발생했을 때 적용된다.

여기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인정 범위다. 작업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한 사망자의 경우에는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로 인정되지만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에 대한 판단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차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직업성 질병에 대해 업무에 관계되는 유해·위험 요인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해 발생하였음이 명확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질병으로 인한 사망의 경우 종사자 개인의 고혈압이나 당뇨, 생활 습관 등 다양한 용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질병의 원인이 업무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질병 사망자에 대한 판단에 따라 많은 논쟁을 발생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 향후 치열한 법적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10월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과로사가 중대재해에 포함되지 않아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직업성 질환자의 범위를 화학적 인지에 의한 급성 중독, 반응성 기도과민증후군, 열사병 등 24개로 한정했는데, 최근 많은 노동자를 사망으로 몰고 간 뇌·심혈관 질환을 직업성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세였기 때문에 제조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산업재해 사망자가 전체의 과반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점차 변하면서 질병 사망자의 수가 늘었으며, 2017년부터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아지게 됐다. 여기에는 중독성 물질에 의한 사망 외에도 과로로 인한 사망도 포함되어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업들의 대처

기업들 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장 껄끄러운 것은 산업 재해 발생 시 처벌 대상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이며 그 처벌 수위도 징역 1년 이상으로 무겁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는 창업주나 총수가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일선에서 물러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쿠팡의 창업자인 김범석 전 의장은 2020년 12월 쿠팡 대표직을 사임한 데 이어 2021년 6월 한국 이사회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을 모두 내려놓았다. 사실상 한국 쿠팡 법인과 관련된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는 대신 쿠팡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쿠팡은 최근 산업 재해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과도한 작업량이 할당되면서 쿠팡 택배 노동자가 1년 사이 6명이 과로사 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내부적으로는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규정들이 자주 도마에 올랐다. 비록 과로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 직업성 질환의 범위에서 빠지긴 했지만, 최근 가장 자주 논란에 휩싸였던 기업이 쿠팡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많은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더욱이 김범석 전 의장이 의장직 사퇴 발표를 한 날은 쿠팡 물류센터 한 곳이 대형 화재로 전소된 다음 날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의 모든 책임과 권한을 벗어 던진 김범석 의장은 미국의 상장 법인인 쿠팡Inc의 CEO와 이사회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쿠팡Inc는 쿠팡 한국 법인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기업의 오너로서 영향력은 계속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쿠팡처럼 기업 총수가 일선에서 물러나 책임은 회피하고 오너로서 뒤에서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사례는 국내 대기업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행태다.

기업 총수의 책임 회피 움직임과는 별개로 산업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 안전 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ICT는 작업장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현장관리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안전 관리뿐 아니라 환경 관리와 품질 관리까지 개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내부적으로 안전 프로세스 구축을 위한 공모전을 진행했고, 삼성물산은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작업 중지권을 도입했으며, 지자체에서도 지역 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안전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영상 보안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가 되고 있다. 기업들이 산업 현장 안전을 위한 인공지능(AI) 기반의 관제 솔루션을 도입하면서 영상 보안 기업들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적극적으로 산업 안전 시장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법제도 개선뿐 아니라 산업 안전 위한 실질적 행동 필요

고용노동부에서 공개하는 산업 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2021년 1월부터 9월까지 1635명이 사망했으며, 사고 사망자 수는 678명, 질병 사망자 수가 957명으로 질병 사망자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동기와 비교하면 전체 사망자는 64명이 늘었고, 이 중에서 질병 사망자 수가 46명이었다. 이제 산업 재해는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뿐 아니라 직업성 질환자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 됐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직업성 질환자 범위를 이전 기준인 산업안전보건법에 기반을 두고 있어 과로사 등 급증하는 현재의 사업 재해 경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당장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에 문제가 많다며 개정을 주장하고 있지만, 시기 상으로 대선 등이 맞물리면서 보안점이나 개정안이 빠르게 논의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차례의 대형 산업 재해가 발생했었고, 그때마다 노동법 제정이나 개정 등이 이루어지며 겉으로는 노동 환경 개선과 산업 재해 방지를 위한 정책들이 추진됐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부디 과거의 수많은 노동법 제정 및 개정처럼 여론 돌리기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으로 산업 재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