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XaaS의 시대, 기업의 전문성이 곧 서비스가 된다

'as-a-Service’로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2020-12-08     석주원 기자

[글=노규남 | KINX CTO]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그리고 애플 등이 게임 스트리밍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며 콘텐츠 확보와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일정한 성능 이상의 하드웨어를 갖추어야 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고가의 하드웨어 없이도 인터넷 접속만으로 최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가능케 해주는 기술이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이제는 모든 서비스들이 클라우드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모든 것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시대

클라우드 컴퓨팅의 등장 이후 많은 서비스의 클라우드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 클라우드 서비스인 IaaS(서비스형인프라), PaaS(서비스형플랫폼), SaaS(서비스형소프트웨어)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의 유무형 상품들이 ‘as-a-Service’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그야말로 XaaS(Everything as a Service)의 시대라 할만하다.

이런 상품들의 등장은 기업들의 온라인 서비스 출시를 더욱 쉽게 만들어주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자체 전산실을 마련하고, 전용 회선을 연결해야 했으며, 유닉스 기반 운영체제를 설치한 고가의 벤더 서버까지 갖춰야 했다. 절차와 비용, 전문 지식 등이 온라인 서비스 구축의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은 클라우드 상에서 내가 원하는 자원을 선택해 구축하면 당일에도 바로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서비스화, 유틸리티화하는 것이 바로 클라우드의 본질이다. 고객은 인프라를 소유하지 않고 빌려서 사용한다. 요금은 다소 비쌀 수 있으나 장기적인 총 소유비용(TCO)을 계산해보면 클라우드쪽이 더 이득이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의 지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의사 결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계획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더 많은 고객에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금융 서비스로 살펴보는 XaaS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서비스의 대표적인 예가 핀테크다. 2019년에 하나의 뱅킹 애플리케이션으로 여러 은행 계좌를 조회하고 결제 및 송금할 수 있는 오픈뱅킹 시스템이 마련됐으며, 그 결과 오픈 API를 활용한 수많은 핀테크 서비스가 생겨났다. 자금과 영업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들도 참신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사고를 더 확장하면 ‘은행’ 그 자체가 as-a-Service로 제공될 수도 있다. 규제, 자본금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규제가 완화되어 기존 은행이 일부 서비스를 열어 줄 수 있다면, 전에 없던 새로운 은행 서비스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은행의 특정 서비스를 API로 연동해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다면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 은행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BaaS(Banking as a Service)라 불리며,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기업들이 이런 서비스를 출시했다. 독일의 솔라리스뱅크나 영국의 뱅커블, 그린 닷 등이 대표적이다. 솔라리스뱅크는 ‘은행업 라이선스를 가진 기술 기업’을 자칭하며 계좌 관리, 카드, 결제 등의 금융 서비스 API를 기업에 제공한다.

솔라리스뱅크의 서비스를 이용해 은행업을 하고 있는 펜타는 기업 대상 계좌 개설 서비스로 차별화를 하고 있다. 48시간 내 빠른 계좌 개설, 전 직원 비자(VISA) 카드 발급, 무료 비용관리, 최대 10만 유로까지의 예금자 보호 등 기존 유럽 은행들이 제공하지 않는 파격적인 서비스로 기업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계좌 유지비용은 1개월당 9유로부터 시작하며, 일반적 온라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60일 무료 체험도 제공한다.

솔라리스뱅크와 펜타는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비즈니스가 실제 서비스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좋은 사례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의 파괴적인 서비스가 물꼬를 터서 전체 산업의 지형이 바뀌기도 한다.

펜타의

 

XaaS가 바꾸는 비즈니스 지형도

또 어떤 서비스가 as-a-Service로 전환될 수 있을까? 진입 장벽이 높은 서비스일수록 XaaS화되었을 때 큰 환영을 받을 것이다. 공장을 as-a-Service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중소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지어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공장의 기능을 as-a-Service로 제공하는 사업자가 있다면 작은 기업도 특화된 물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모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서비스는 통상 FaaS(Factory as a Service)라 불린다.

FaaS는 필연적으로 스마트팩토리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제품의 기획부터 생산, 제조,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온라인에서 온디맨드(On Demand)로 제공하기 위해서 공정에 필요한 수작업을 반드시 자동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품을 as-a-Service 형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파생되는데 이를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객 입장에서도 필요한 여러 서비스를 통합해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체 인프라에서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해진다. IT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aS를 온라인 서비스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처우 문제 등 이슈가 있긴 하지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배달 대행 서비스도 이에 해당한다. 배달 사원을 채용하고, 근무 시간을 협상해 비용을 산정하는 등의 일을 전부 전문 배달 대행사에 맡기면 관리 비용은 줄어들고 서비스의 유연함은 늘어난다. 덕분에 사용자들은 기존에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던 고급 음식점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면 비즈니스 생태계는 더욱 확대되고 풍요로워진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업은 물론 소비자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문성을 바탕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XaaS 시장은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XaaS의 시대, 기업은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그렇다면 XaaS의 시대에 직면한 기업들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까?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케이아이엔엑스(이하 KINX)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KINX는 ‘중립적 네트워크 운영에 전문성을 가진 인터넷 인프라 회사’다. KINX가 구축한 네트워크 전문성은 일반 회사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최근 채용 시장에서 숙련된 서버 엔지니어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데, 네트워크 엔지니어를 구하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학교나 학원에서 실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충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네트워크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존재할 수 있다. 일례로 인력 10명 미만의 스타트업이 통신사업자와 회선을 계약하거나 엔지니어를 채용해 네트워크를 직접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XaaS 형태의 네트워크 서비스가 적절한 가격에 제공된다면 소규모 스타트업도 다양한 네트워크 서비스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네트워크 운영 역시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업체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런 추세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KINX가 제공하는 인터넷 회선 연동(IX) 서비스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분야다. 여러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를 상호 접속(Peering)의 형태로 연동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인프라와 환경을 구축하기가 어렵고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여섯 개 사업자(KT, KINX,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세종텔레콤, 한국정보화진흥원)만 존재하며 신규 IX 사업을 시작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네덜란드 회사 AMS-IX는 IX를 as-a-Service의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AMS-IX의 IX-as-a-Service를 신청하면 많은 비용이 드는 인프라나 회선 투자 없이 가상의 IX를 구동할 수 있게 된다. 다만, AMS-IX가 운영하는 데이터센터(IDC)에서 코로케이션 서비스를 이용 중이며 ASN(망식별번호)을 가지고 있는 기업만이 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실제로 바레인의 바텔코라는 업체가 이 서비스를 활용해 서아시아 지역에서 IX를 구동하고 있다.

ASN 보유가 전제되어야 하며, 신청 및 구축 과정이 대부분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as-a-Service의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서비스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미래에는 현재 큰 기업들만이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 상품에 중소기업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흐름에 의한 산업 생태계의 확대 및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AMS-IX의

 

세분화되는 서비스, 전문성을 갖춘 기업

KINX는 IX 외에도 트랜짓, IDC, CDN(콘텐츠 전송 네트워크), 국제 회선, 클라우드 등 여러 상품을 제공한다. 현재는 일부 상품만 as-a-Service 형태로 제공하고 있으나, 향후 대부분이 as-a-Service로 전환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서비스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성에 대한 수요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클라우드 분야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최근 각광받고 있는 컨테이너 오케스트레이션 도구인 쿠버네티스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도 네트워크 전문성은 필수적이다. 쿠버네티스 환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네트워크 플러그인(CNI)은 캘리코(Calico)인데, 캘리코는 BGP(Border Gateway Protocol) 기반 L3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때문에 설치 후 모든 워커 노드(Workernode)들이 BGP Mesh를 형성한다.

이 경우 BGP 통신에 문제가 생기면 동일 워커 안의 팟(pod)끼리는 통신이 되지만 다른 워커 내의 팟과는 통신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캘리코의 작동 방식과 BGP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나 인력은 매우 제한적이므로 as-a-Service로의 진화가 필연적이다.

캘리코의

 

돌이켜보면 AWS가 처음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는 인프라를 가상화하는 기술이 그들의 전문성이었다. 가상화된 대규모 인프라를 유연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IaaS 기술은 상향 평준화, 범용화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이를 기업의 경쟁력이라 말하기 어렵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볼 때 서비스 제공 업체가 현재 고민해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나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이 전문성을 어떻게 XaaS화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고객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가?

앞으로는 각 기업이 가진 전문성이 곧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향후의 비즈니스는 기업이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 밖의 부문을 아웃소싱해 생산성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