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기의 국내 CCTV산업 기반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 시급

2019-09-05     석주원 기자
[이형용 | 한국영상정보처리기기협동조합 이사장]

우리나라의 CCTV산업은 1990년대 우수한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 제조사들이 국내 시장에 깊숙이 침투해 국내 CCTV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20년 전에는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우리의 CCTV산업을 어떻게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CCTV산업의 구조에 대한 진단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국내 CCTV 기술력

 
CCTV는 크게 촬상부-전송부-감시녹화부의 3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감시녹화부는 CCTV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에 표시해주고, 동시에 저장장치에 해당 영상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영상을 저장하는 장치를 디지털 영상저장장치(Digital Video Recorder, DVR)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이 DVR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96년으로, 당시 코디콤이 개발한 DVR을 나이스 신용정보회사에서 현금지급기 관리용으로 설치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DVR이 등장하기 전까지 CCTV의 저장장치는 비디오테이프였다. 문제는 비디오테이프의 녹화 시간이 매우 짧아서, 2시간에서 길어도 36시간마다 테이프를 교체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실수로 CCTV녹화 테이프를 교체하지 않아 영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했다. DVR은 비디오테이프가 갖고 있던 이러한 단점들을 해소해 준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각광받았고, 금융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DVR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DVR의 주요 개발업체였던 3R, 아이디스, 코디콤, 피카소정보통신 등 4곳이 기업 공개를 통해 코스닥에 안착한 것에서 당시 DVR 시장의 호황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DVR은 삼성전자, LG전자, 한국 하니웰,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S1, 캡스, 현대통신, 인터엠, 코멕스, 코콤, 포스데이타, 국제전자, 롯데정보통신, 나이스신용정보 등 수많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에 OEM 방식으로 공급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이 기업들은 납품받은 DVR을 자체 생산하는 CCTV카메라 등과 함께 묶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했고, 국내 CCTV제품의 기술력을 세계 시장에 널리 전파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중국산 불법복제 DVR이 등장하면서 국내 CCTV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반면, 중국은 그 당시 국내 DVR를 복제했던 기술을 바탕으로 이제는 전 세계 CCTV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 기술보다 편법이 앞선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기술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직접생산확인제도다. 이 제도는 중소벤처기업들이 공공기관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는 자격을 주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마련됐다. 소관 부서는 중소벤처기업부 공공구매판로과로, 신청도 해당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직접생산확인제도는 제품별로 세세하게 품목을 분류하고 있는데, CCTV는 ‘폐쇄회로텔레비젼시스템’으로 분류되어 있다. 폐쇄회로텔레비전시스템의 직접생산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부제품(카메라, 렌즈, PAN/TILT, RECEIVER, 영상컨트롤러, 영상관련서버, 모니터링서버, 영상저장장치 등) 중 1개 이상을 외부에서 구입한 원ㆍ부자재, 부분품 및 모듈 등과 자체 보유 생산시설 및 인력에 의해 설계도에 따라 직접생산하고, 검사설비를 이용 최종 시험검사한 후, 영상정보 수집에 필요한 주변장치 등과 시스템을 구성해 제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구체적인 세부 조건들을 살펴보면, 먼저 인력은 대표자를 포함한 상시 근로자가 3인 이상 있어야 하며, 이 중 기술계 정보통신기술자 1명 이상과 소프트웨어기술자 1명 이상이 포함되어야 한다. 생산시설로는 전동공구, 인두기 및 납 제거기, 절단기, 와이퍼 스트리퍼, 작업대 등이 필요하고, 검사설비로는 오실로스코프, 패턴제너레이터, 백터스코프, 모니터, 테스터기, 전원공급장치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지만 지면에서 모두 소개하기는 어려우니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확인하도록 하자. 어쨌든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 직접생산확인 증명서가 발급되고, 이후부터 정부 조달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제도에도 구멍이 많다. 얼마 전 15년 이상 CCTV카메라를 생산한 한 제조사는 직접생산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실제로는 불필요한 장비를 구매해야 했다. 반면, 전문 컨설팅을 받은 어떤 중소기업은 실제로 CCTV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손쉽게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례도 있다. 이처럼 직접생산확인제도를 본래 취지와 달리 악용하는 기업들이 많지만, 이를 단속하는 등의 사후 관리는 소홀하다. 결국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관리 소홀로 인해 실제로 CCTV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업체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직접생산 증명서를 발급받은 수많은 업체들이 사업에 낙찰되면 중국산 제품을 공급받아 납품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책 마련 필요
 
직접생산확인제도는 중소기업을 위한 제도이므로 국내 1위 CCTV기업인 한화테크윈 같은 대기업은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데 세계 시장에서 한화테크윈보다 더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국의 거대 CCTV기업들은, 무늬만 직접생산자인 제조사들을 통해 국내 공공기관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2018년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직접생산확인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즉시 조치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아직도 변한 것은 없다.
현재 CCTV분야에서 직접생산 증명서를 발급받은 업체는 약 1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제품을 직접 생산해 납품이 가능한 업체는 1%도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된 점검과 사후 관리의 부재로 오히려 기술력을 갖춘 국내 CCTV제조사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DVR 개발을 중심으로 전 세계 CCTV시장을 주도했지만, 현재는 실질적으로 개발 생산이 가능한 기업이 한화테크윈, 아이디스, 대명코퍼레이션(웹게이트) 등 손에 꼽을 정도만 남았다.
반면 수백억 원씩 매출을 올리는 인터넷 온라인 판매 회사들이 민수 CCTV시장을 주도하고, 조달우수와 NEP 등의 정부 조달에 혜택을 받는 업체들이 공공시장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이들 유통 회사들은 CCTV를 판매해 발생하는 수입을 개발이나 생산설비 구축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들은 중국 제품을 들여와 번 돈으로 다시 중국 제품을 국내에 더 많이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수조달물품 지정제도와 NEP(신제품) 인증제도, 공공기관 우선구매 제도는 당초 기술개발 장려의 취지와 달리, 인증 업체들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가 되어 실질적인 기술개발 장려의 목적보다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라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나라의 CCTV산업이 약화된 요인에는 이렇게 잘못 운용된 정부 정책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 국내 CCTV산업의 위기는 전문지식이 없는 실무 책임자와 무사안일의 공무원 조직이 만든 합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CCTV산업은 단순한 보안산업의 영역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정부도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해 전국 각 지자체에 230여 개의 CCTV통합관제센터를 구축했으며, 100만 대 이상의 공공 CCTV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정부 투자에도 불구하고 국내 CCTV산업의 기술 경쟁력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로 CCTV산업을 세계 1위로 키워냈다. 물론,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운영 중인 제도가 정말 취지에 맞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지 정도는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는 지금이라도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정책을 펼쳐주길 기대한다.
 

끝으로 조달청의 CCTV계약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첨부한다.

이 자료는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계약한 5년간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로, 최대 870개 업체가 참여했으며 이중 상위 10위 업체가 계약한 물량은 최대 40.29%에 달한다. 공공 조달 시장의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30~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나라 조달 정책에 대한 정부의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조달우수, NEP 등 정부 정책의 본래 취지에 맞도록 운용되는지 그것이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지 세심하고도 전문적인 정책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