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블록체인에 대한 가치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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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블록체인에 대한 가치와 기대
  • 조중환 기자
  • 승인 2018.10.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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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연 SK(주) 고문

지난 해 가상화폐로 한창 뜨거웠던 블록체인 열기가 이제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다. 수많은 ICO에 맹목적인 기대가 가라앉고, 좀 더 냉정한 시각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변화이다. 특히 최근에는 법/제도 개선이나 현재 블록체인의 기술 수준을 가지고 접목될 수 있는 실질적인 분야에 탐색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 중에 단연 돋보이는 분야가 바로 헬스케어 분야이다.

최근 호주연방 정부는 ‘마이 헬스케어 레코드(My Health Record)’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호주 국민의 건강, 약물복용 정보를 통합하고 각 개인에 특화된 맞춤 의료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이 서비스 출시와 더불어 개인 건강정보의 보관과 공유를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블록체인 활용에 매우 적극적인 에스토니아는 약 130만 명의 소국이기는 하나 국가 차원의 의료와 보건 분야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첫 사례로 기록되고 있고, 지난 3월 스탠포드 대학의 사회혁신 센터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와 관련된 194개 사례를 조사하면서, 전체 25% 이상 사례들이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 공공, 행정, 에너지, 환경 등 많은 분야에서의 적용 기회와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지만, 유독 헬스케어 분야가 관심과 주목을 받는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의료정보가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의료정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금융 이상의 보안수준이 요구된다. 따라서 데이터 조작이나 변조로 인한 정보의 신뢰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의료정보를 조작하거나 또는 병원, 기업과 같은 전문기관에서 데이터 변조가 이뤄진다면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불가역성을 보장하는 매커니즘으로 철저히 데이터 조작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개인의 과거 이력을 포함한 진료기록을 공유함으로써 개인의 치료와 진단,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개인의 정보주권에 대한 회복이다. 수많은 진료기록과 건강 정보들이 개인의 소유임에도 정작 그 소유권의 주장과 권리행사에 개인은 소외돼 있다. 진료받은 의료기관에 자신의 진료정보를 요구할 수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동일한 진료와 검사를 의료기관이 바뀔 때 마다 반복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관행화되어 있다. 최근 유럽에서 발효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의 골자는 유럽시민의 개인정보를 유럽만이 아닌 전 세계의 사업장으로 확대한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보다 핵심적인 부분은 개인이 정보주체로써 자기 통제권을 크게 강화했다는 점이다. 바로 잊혀질 권리, 정보 처리의 제한, 정보 이전권 등 개인의 정보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이러한 제도, 규제의 변화에 블록체인을 적용함으로써 공공의 의료장부(Medical Leger)가 특정 기관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자신의 의료정보를 통제하고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매우 분산화되고 분절된 의료정보가 개인과 기관 또는 기관과 기관간 교환 및 거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의료정보는 개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병원, 약국, 제약회사, 보건기관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필요에 따라 데이터를 생성하고 각자가 보관하고 있다. 각 병원에 분산된 의료 데이터를 통합하기 위해 데이터 표준(Common Data Model)을 정의하고 특정 시점에 표준 데이터로 전환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응급환자의 치료, 전염병 확산, 임상후보의 선정 등 실제 의료현장의 정보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MIT 미디어랩의 메드렉(MedRec), 그리고 한국의 메디블록(Medibloc) 같은 스타트업은 여러 의료기관에 분산된 진료정보를 통합, 공유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미국 국가건강정보기술국은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블록체인 가능성을 보고, 의료정보의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과 적용 사례에 대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의 조건들이 잘 준비되고 실제 의료, 보건현장에 접목된다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큰 사회적 영향과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개인 진료/건강정보의 보호 강화, 의료 정보의 무결성과 책임 추적성 강화, 의료 연구 데이타의 공유와 활용 증대, 의료기기와 약물유통 채널의 추적, 임상시험의 안전성 향상, 보험청구와 심사 프로세스의 효율화 등 헬스케어 산업 생태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한 국민건강과 비용 절감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가치의 창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의료정보 교환은 [그림 1]에서 보여주는 '모델1'의 모습이다. 모든 진료기록은 의료기관에 분리 보관돼 있고, 종종 재무적 이득이나 제도적 압력에 의해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데이터 측면에서 매우 낮은 유동성을 가진 '기관 주도의 의료정보 공유체계' 이다. 이 방식을 '환자 주도의 호환체계'로 전환한다면 '모델2'와 같이 환자가 의료정보 공유에 중심에서 직접 본인의 진료정보를 보관하고, 자신의 감독하에 관련 의료기관에 진료정보를 보내거나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발전된 모습의 '모델3'은 '블록체인 기반의 환자주도 호환체계' 이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모든 진료, 건강, 약물 등 의료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리고 자신의 승인 하에 해당 정보의 공유와 열람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모든 의료정보가 자기 통제하에 관리됨으로써 완벽한 개인의 정보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 의료정보의 공유 모델

의료산업의 핵심은 데이터다. 정밀의료, 맞춤/예측의료와 같은 미래 의료산업의 모습은 의료 데이터의 개방(Open)과 안전(Security)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관점에서 개방과 안전이라는 양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기술로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직 풀어야 할 도전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이슈는 의료정보 공유와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다. 이는 그 동안 개인 의료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유지되어 왔던 제도, 규제의 대폭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합의의 내용이 공유할 정보 자체에서부터 공유의 방식, 데이터의 보호 수준, 그리고 관리감독의 주체와 절차 등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돼 있다. 결국은 의료정보를 보유한 개인, 병원, 기관이 해당 정보를 적극 공개하고 참여할 수 있는 보상 매커니즘(Incentive Mechanism)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법, 제도의 전향적인 큰 변화보다 환자, 병원에 실제 도움이 되는 단위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적용, 확산해 가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두번째 이슈는 블록체인이 가진 기술적 제약의 문제이다. 블록체인은 다른 어떤 기술보다 매우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이지만, PHR(Personal Health Record), 유전체 데이터, 영상 데이터 등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운용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블록체인 기술구조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온체인과 오프체인으로 구분된 데이터 처리가 안전하게 작동될 수 있어야 하고, 다수 참여자가 개인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 효과적으로 공유,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개선이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 데이터 표준의 문제다. 현재 의료정보 분야에서 임상데이터 유통을 위해 등장한 것이 HL7의 CDA(Clinical Document Architecture)다. 이 방식으로 종별 의료기관에 상관없이 의료기관 간 의료정보 공유와 교환이 가능한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블록체인 상에 유통을 위한 데이터 저장표준으로 CDM(Common Data Model)을 사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CDM의 경우 의학연구를 목적으로 의료기관 데이터를 표준화하면서 원본 데이터의 왜곡이 가능하고 CDM으로 정의된 데이터만 유통할 수 있다. 현재는 3차 병원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상황이라 1차 병원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블록체인의 의료분야 활용이 단순히 의학 연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 유통을 위한 최적의 대안은 보다 심도 깊은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임상시장에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이 시행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뛰어난 의료진과 임상의료기관의 지원 및 인프라 확충에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임상시험의 70%는 외국 제약사의 신약개발에 집중되어 있다. 많은 한국 제약기업들의 신약개발이 최근 증가하고 있지만, 임상시험의 엄청난 투자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형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임상분석, 시장조사의 CRO(Clinical Research Operation)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내기업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만약 국내에 축적된 의료기록을 블록체인으로 안전하게 유통하여 최적의 임상후보를 찾고 신약개발의 위험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 임상데이터 분석과 임상시험 솔루션을 제공하는 메디데이터는 시가 총액 4조 5천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의료 서비스 기업이다.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는 메디데이터의 임상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하여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임상 기간을 평균 6~7년 단축했고, 임상 3상에 환자1명당 들어가는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가 있다.

블록체인이 지닌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에 기록된 내용들은 모든 참여자의 동의를 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한 정보의 교환이 아닌 가치의 교환으로 데이터의 관점을 전환시킴으로써 깊게 닫혀 있던 데이터가 공유될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 데이터가 안전하게 유통되는 공급망이 만들어지고 그 네트워크에서 파생되는 의료기기, 정밀의료, 나아가 데이터 거래를 가능케 하는 플랫폼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풀지 못했던 의료산업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블록체인이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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