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온] 산업 안전, 노동자의 생명 지키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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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온] 산업 안전, 노동자의 생명 지키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
  • 석주원 기자
  • 승인 2022.01.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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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안전 관련 법제도 정비의 역사

우리 국민이 인식하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는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개발도상국’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이 주로 포함되어 있는 그룹 A에서 선진국이 속해 있는 그룹 B로 옮기는 안건이 통과하면서 이제는 국제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 여건은 선진국과 비교해 여전히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긴 노동 시간, 직종별 격차가 큰 노동 임금 등의 기본적인 문제는 물론,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률 역시 OECD 최상위에 올라 있다.

특히, 산업 재해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로, 우리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과 노동자 보호를 위해서는산업 안전에 대한 인식 제고와 법제도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노동법의 탄생과 발전 과정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했다가,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격한 경제 발전을 통해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경제 성장률을 살펴보면 1965년까지는 10% 이하에서 맴돌다가 1966년 12%로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10%를 넘나드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지속하며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제적 성공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기업과 기업 친화적인 정부로부터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은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 얼룩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동법이 제정된 것은 1953년 5월로 최초의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등이 이때 탄생했다. 당시 제정된 노동법은 일본의 노동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노동법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군이 일본을 통치하던 시기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노동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데 있다. 애초에 연합군 군정이 일본 사정에 맞춰 제정한 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가와 기업가가 한 몸이 되어 성장만을 외치며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바빴다는 점이다. 독재 정권 하에서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구호 아래 노동자의 희생은 당연시되고 외면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의 인권이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를 희생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이후부터였다.

전태일 열사의 희생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노동 운동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물론 그 이전까지 십수 년을 이어왔던 열악한 노동 여건이 하루아침에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노동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63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986년 최저임금법, 1990년 산업안전법, 1993년 고용보험법이 제정되며 점차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했다.

 

국제적 지위 상승에 따른 노동법 정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제연합(UN, 이하 유엔)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것은 1949년이었지만, 실제로 유엔에 가입이 승인된 것은 1991년으로 상당히 늦은 시기였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가입이 승인되기 전까지 총 8차례 가입 신청을 했지만,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소련 등의 반대로 번번이 가입이 무산됐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이 사실상 종식되고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마침내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 됐다.

유엔 가입은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국제 질서 속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유엔에 가입한 1991년 12월에 유엔 산하의 전문 기관인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에도 가입했고, 1996년 12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ILO는 물론이고 OECD 역시 회원국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노동 환경 준수를 요구하는데, 우리나라 역시 국제기구에 가입하면서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압박과 노동자 인권 강화를 요구하는 국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1997년 근로기준법의 전면 재제정이 이루어졌다. 그 이전까지는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법 자체가 낡은 데다 경제 발전을 이유로 기업가들의 의견이 반영된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져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았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이 1996년에 발생한 여당의 노동법 날치기 사태였다.

1996년 12월, 문민정부 시절 여당으로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갖고 있던 신한국당은 몰래 여당 의원들만 소집해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단독으로 처리해 버렸다. 이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전국적인 총파업을 감행했고, 40일 동안 노동법 날치기를 규탄하고 개정을 촉구하는 가두집회를 이어갔다. 결국 국민적 여론에 밀린 정부와 여당은 야당과 합의한 기존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근로기준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새로운 근로기준법이 꼭 노동자의 편이었던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포괄임금제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항들이 새로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리해고제는 1997년 말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 때 기업들로 하여금 대규모 구조 조정을 가능케 해줬다.

 

산업안전법의 분리와 발전

노동법은 노동과 관련된 여러 법을 총칭하는 용어로, 여기에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노동조합법, 최저임금법 등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법 중에서 노동자의 안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법이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다. 노동법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의 이름처럼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항들을 규정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것은 1981년으로, 그 전까지는 근로기준법 한편에 안전과 보건에 대한 조항을 포함시킨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빠른 경제 발전으로 산업 규모가 커지고, 그로 인해 산업 재해 발생 빈도와 손실이 커지면서 산업 안전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0년 당시 산업 재해로 인한 피해자 수는 1970년 대비 3배가 증가했다고 하는데, 1977년 11월에 발생한 이리역 폭발 사고와 장성탄광 화재 사고는 7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며 산업 안전 제도 강화에 대한 국민적인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런 여론을 의식해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법률을 근로기준법에서 분리해 독립 법안으로 제정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 발표는 박정희 사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후 실제로 이행됐다. 하지만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 보호’라는 취지보다는, 기업의 입장이 반영된 ‘인력 손실 방지’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다. 즉, 적극적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정보다는 노동력 손실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설치한다는 취지에서 접근한 것이다.

더욱이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재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산업 재해 예방과, 피해 발생 시 보상 주체를 두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가령 정부는 산업 안전에 대해 ‘기업의 자율적 노력’을 강조했고, 기업은 ‘국민 전체의 의식 고취’가 필요하다며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이처럼 제정 때부터 논란의 씨앗을 품고 있었고, 그마저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산업 현장에서 하루 평균 5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기업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를 생각한다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아서, 2010년대 2천 명 아래로 떨어졌던 연간 산업 재해 사망자 수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연속 2천 명을 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정부가 특단의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다.

 

여전히 뒤처진 국내 노동 환경 인식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산업 현장에서의 사망자 발생과 관련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보다 적극적인 책임을 물려 산업 재해를 줄여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 여야는 물론 경영계와 노동계도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결국 일부 예외 조항을 두는 형태로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은 올해 1월 27일부터다. 노동계에서는 반쪽짜리 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얼마나 큰 실효성을 가질지는 시행 후 적용 사례를 살펴봐야 할 듯싶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동법 체계와 인식은 여전히 선진국 수준에 크게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가 1991년에 가입한 ILO에서는 회원국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여러 협약 비준을 권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8개의 핵심 협약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이 중에서 4개 협약에만 비준하고 있었다. ILO 회원국 187개 중 76%가 8개 협약을 모두 비준했고, 7개 이상을 비준한 비율은 85%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의 노동법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 알 수 있다.

이에 문재인 정권은 ILO 핵심 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2021년 4월에 실제로 남은 4개의 핵심 공약 중 3개의 비준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도 이제서야 국제 노동법 권고 기준을 따라가게 됐다.

이번 정권이 그동안 미뤄뒀던 3개 항목의 비준을 추진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상승하면서 그에 걸맞은 국제 규제를 따라야 한다는 국내외 목소리가 높아졌고, 주요 선진국과의 거래에서 해당 협약 준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져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영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 개선의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올해 3월에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차기 대선 후보들도 다양한 노동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정당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정책을 주장하고 있어 다음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우리의 노동 환경은 다시 한번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산업 안전을 위해 어떠한 공약을 실천 과제를 제시하는지도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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