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것이 알고 싶다. 또 다시 허점 드러낸 ‘군 과학화 경계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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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것이 알고 싶다. 또 다시 허점 드러낸 ‘군 과학화 경계시스템’
  • 석주원 기자
  • 승인 2021.04.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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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용 | 한국영상정보처리기기협동조합 이사장, 한국CCTV연구소 소장]

 

이형용 이사장
이형용 이사장

지난 2월 16일, 20대 초반의 북한 남성이 6시간가량 동해를 헤엄쳐 내려와 귀순을 신청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헤엄 귀순’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귀순자가 군부대 CCTV에 수차례 감지됐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육군지상작전사령부의 합동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자 24명에 대해 인사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3월 4일 밝혔다.

군부대 CCTV가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육군이 진행하는 2백억 원 규모의 '해강안 사업'과 관련해 납품 업체가 중국산 제품을 국산으로 둔갑해 군에 납품한 것이 국방부 국정감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과학화 경계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위에 언급한 두 건의 사례는 군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커다란 허점이 드러냈다. 반복적으로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군 CCTV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도입 취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시작은 김대중 정부 시절 ‘21세기 대비 정예 과학군 육성’이라는 목표 아래 추진 됐다. 당시는 CCTV가 다양한 분야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양적 팽창의 시기에 속한다. 기술적으로도 CCD 촬상 소자를 이용한 SD급(41만 화소) 아날로그 CCTV 카메라가 도입되고, 디지털 비디오 녹화기인 DVR이 도입돼 편의성과 확장성이 대폭 개선되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이렇게 발전된 CCTV 기술은 군의 경계 근무에도 도입됐다. 병력의 육안에만 의지했던 초소 경계에 CCTV 카메라를 도입하고, 상황실에서 여러 초소에 설치된 CCTV 카메라를 모니터링함으로써 경계 감시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후 약 25년의 시간 동안 기술은 더욱 발전해, 화질은 HD에서 UHD로 좋아졌고 DVR이 NVR로 대체되면서 완벽한 디지털 CCTV 시스템이 정착됐다. 그렇다면 군부대의 CCTV 운영 역시 25년 동안 그만큼의 발전이 있었을까? 아쉽게도 전문가의 시선으로 봤을 때 군의 CCTV 운영 체계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름뿐인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허점

우리 군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는 데 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도입할 때부터 시스템이 현장 여건에 맞도록 설계, 시공, 운용 및 유지보수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뉴스에 등장하는 군 CCTV에서는 이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영상보안 시스템의 개념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영상기기를 매일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변에서 흔하게 CCTV를 찾아볼 수 있고, 가정용 CCTV를 설치하기도 하며, 심지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기기로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영상기기에 대한 이해와 사용 경험이 있으면 스스로가 CCTV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한 예로, 익명의 공공 기관 임원이 자신의 차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통해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난 차량의 번호를 찾아 가해자를 잡았다. 이 임원은 차량용 블랙박스가 성능도 좋고 CCTV보다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에, CCTV 대신 블랙박스를 도로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해당 임원은 실무자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도로에 설치된 블랙박스로는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설치 목적과 장소에 따라 필요 기술과 운용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으로 습득한 얄팍한 지식을 앞세우는 결정권자 아래에서는 영상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군의 경우는 상하 지휘 체계가 더욱 극명하므로 이러한 사례가 비일비재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즉, 반복되는 군부대 CCTV 참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잘 아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전문가가 책임자로 있어야 한다.

 

진정한 전문가 도입이 필요

5년 전인 2016년 2월 3일, 방위사업청과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방위사업 분야 CCTV 지능형 영상분석 소프트웨어 인증 체계 도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인증 체계는 미래부가 2015년부터 80여억 원을 들여 5년간 추진하는 ‘지능형 영상장비 육성 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실시간으로 CCTV 영상을 분석해 외부자 침입, 배회, 폭행 등 다양한 상황을 인지, 판단 후 자동으로 경보를 발생시키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인증 체계로 인증을 받은 제품은 별도의 성능 검증 없이 인증서 확인만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당시 관계자들은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방위 사업 분야 경계·감시 체계에 지능형 영상분석 소프트웨어의 인증 체계를 갖추게 되고, 기술 수준이 향상된 시스템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처음 목표했던 수준의 몇 %나 달성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심각한 인구절벽에 직면하고 있으며, 병역 인구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필연적으로 미래의 군은 지금보다 더 과학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허술한 전문가 집단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만들어 봐야 올바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2023년까지 인공지능 CCTV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대책은 지금까지의 과오를 되풀이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군 과학화 경계시스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도입이다. 전담 부대를 만들고 부대원들의 지속적인 전문 교육을 통해 군에 딱 맞는 전문가 양성이 첫 번째 과제다. 이들로 하여금 군에 필요한 경계시스템을 설계, 구축, 운용, 유지 관리가 가능하도록 프로세스를 만들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시스템 전문 군인이 과학화 경계시스템 구축의 주체가 되어 군에 필요한 시스템을 설계, 시공, 운용 관리할 때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고, 빠른 대처도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각 부대의 여건과 현장 환경에 맞는 맞춤형 시스템을 연구 개발하는 전담 부서도 필수적으로 도입돼야 한다.

이미 문제점이 여러 차례 드러난 이상, 눈앞의 책임 회피에만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방을 책임지는 군의 올바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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