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수단의 산업화, 경비 보안
상태바
생존 수단의 산업화, 경비 보안
  • 석주원 기자
  • 승인 2020.10.19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간 경비 산업의 태동과 발전

요즘은 ‘보안’이라고 하면 디지털 세상의 보안이 먼저 떠오르지만, 컴퓨터가 개발되기 이전부터 보안의 개념은 존재해 왔다. 보안(保安)의 사전적 정의는 ‘안전을 유지함’이다. 즉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안 활동을 계속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안 활동이 이어져 현재 산업화를 구축한 분야가 바로 출입통제와 경비다.

 

문명의 역사와 함께 한 출입통제

가진 게 많고,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는 국가라는 테두리와 공권력이라는 질서 유지 수단이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있으며, 이는 과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인과 관계를 따져보면 사람들이 무리를 짓고 살게 된 이유가 생존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함께 힘을 모아 식량을 구하고 외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던 소규모 집단들이 규모를 키우면서 마을이 되고, 이러한 마을들이 모여 국가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집단이 커지고 가진 것이 늘어나면서 지켜야 할 공간도 넓어졌으며, 넓어진 삶의 터전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 벽을 세우고 성을 만들어 방비를 단단히 하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안전해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내부 단속과 함께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 것이 물리보안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 성벽이 외적을 막는데 효율적인 역할을 하던 시대에는 성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문의 역할이 매우 컸다. 지금처럼 도시를 둘러싼 방벽이 없는 환경에서는 도시를 드나들 수 있는 수많은 길이 연결되어 있고, 설령 정해진 길이 아니더라도 도시를 출입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던 과거에는 성문 만이 유일한 출입 통로였기 때문에 출입통제의 중요성이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문화재 정도로 인식되는 국보 1호 숭례문을 비롯한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 등 4대문도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을 둘러싼 도성의 출입문 역할을 했으며, 각 문마다 수문장을 배치해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리토록 했다. 숭례문에서는 지금도 도성문을 열고 닫는 파수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했던 출입통제 관문 중 하나인 숭례문
조선시대 한양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했던 출입통제 관문 중 하나인 숭례문

 

국내 민간 경비의 발전

고대 시대의 출입통제는 권력자들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였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출입통제를 강화했으며, 동시에 영토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을 지킬 의무도 지고 있었다. 그런데 외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진다고 해서 내부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집단의 내부에서도 분쟁과 범죄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국가에서 내부의 범죄를 관장하는 조직을 두기 마련이지만, 공권력으로 지킬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별도의 민간 경비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지방 호족의 세력이 강성했던 고려시대에는 호족들이 무사들을 직접 고용해 무력 조직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경비라기보다 군인의 색채가 더 강했다. 이렇게 탄생한 사설 무장 조직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삼별초다.

조선시대에 들어 중앙 권력이 강화되면서 지방 호족들이 대규모 군사 집단을 형성할 수 없게 됐다. 대신 세도가들은 독자적인 사병 집단을 조직해 스스로를 보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사실상 민간 경비의 도입으로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민간 경비가 탄생한 것은 1960년대 초 화영기업과 경원기업이 미8군부대의 용역 경비를 담당하면서부터다. 당시 두 기업은 상공부장관이 발행하는 ‘군납업자등록필증’을 바탕으로 미8군부대에 경비 용역을 제공할 수 있었다. 민간 시설에 대한 최초의 경비 사업은 1962년 범아실업공사가 한국석유저장주식회사와 체결한 용역경비 계약이었다.

민간 경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1960~70년대 사이 많은 민간 경비 업체들이 등장했고, 이에 발맞춰 1970년대에는 관련 법이 제정됐다. 1972년 일본에서 경비업법이 제정되자 국내 경비 업계도 관련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고, 연구 과정을 거쳐 1976년에 용역경비업법이 최초로 제정됐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박람회 등의 대형 국제 행사를 거치면서 민간 경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이러한 특수를 타고 경비 산업도 비상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민간 경비는?

지방 귀족들의 힘이 강성했던 중세 이전의 시대에는 대부분의 지방 권력자들이 사설 군사 조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간 경비의 개념이 희박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초의 민간 경비와 관련한 기록은 의외로 매우 오래된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200년대인 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 시대에 남겨진 기록에는 개인의 민간 경비와 국가 권력의 공경비의 개념이 분리되어 명문화돼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고대 국가들에서 남아 있는 자경단 성격의 치안 조직들 역시 현대적인 해석으로는 민간 경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 경비 산업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에서는 17세기 에도 시대부터 전문 경비 업자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병위’라는 이름의 민간 경비 업자는 부자들의 저택을 경비하거나 물품 운송 등의 업무를 맡았다.

1962년에는 일본 경비 산업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세콤이 일본경비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선수촌 경비를 맡으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세콤은 1980년 우리나라의 삼성과 합작으로 한국경비보장(현 에스원)을 설립했으며, 현재에도 25% 이상의 에스원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여러모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 민간 경비 산업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급증하는 산업 시설의 경비와 장물아비, 위조화폐 등 범죄 행위의 단속을 공권력만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되면서 민간 경비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넓은 땅 덩어리와 미개척지가 많았던 미국에서도 18세기부터 개척지 주민들을 보호하는 민간 경비원이 등장했고, 19세기에는 철도수송의 안전을 민간 경비 회사가 책임지기도 했다.

 

경비와 출입통제가 결합한 현대적 물리보안

과거에는 출입통제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방지하고 경비가 내부의 치안을 담당했다면, 현대에는 경비와 출입통제가 통합된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두 역할이 합쳐졌기 때문이 아니라 출입통제가 경비의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성문처럼 거대한 관문에 대한 출입통제의 비중이 줄었다. 관문 출입통제가 필요한 경우는 대부분 국가의 국경 지대이며, 이러한 국가 중요 시설들은 군인들에 의해 통제된다. 대신 현대 사회에서는 민간 시설에 대한 출입통제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경비원들은 입주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전통적인 경비 활동 외에도 잡상인의 출입 제한, 외부 방문자의 출입 관리 및 주차 관리 등 생활 편의성 향상을 위한 업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비 활동의 기본은 철저한 출입통제에 있다. 이는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대형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입주한 기업과 관계없는 외부인의 건물 출입을 제한함으로써 입주 기업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기업의 중요한 정보 유출을 차단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의 출입통제는 성을 기반으로 한 과거의 출입통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있는 벽이나 건물의 외벽은 과거 도시를 지키던 성벽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의 유일한 통로인 성문을 통제함으로써 외부 위험의 유입을 차단하듯, 아파트 단지와 건물의 출입구를 통제함으로써 불미스러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과거의 출입통제가 관의 역할이었던 반면 현대 사회의 출입통제는 대부분 민간 영역에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는 데 있다.

더욱이 현대의 출입통제와 경비 보안은 첨단 IT 기술을 바탕으로 고도화되면서 인력의 투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무인 출입통제 시스템은 허용된 ㄴ사람들이 보유한 카드키나 생체정보를 통해 자동적으로 출입 여부를 관리하고, 곳곳에 설치된 CCTV 카메라와 센서들은 불온한 활동을 미연에 감지해 통보해 준다.

과거의 경비 회사들이 인력 파견 중심의 기업으로 여겨졌다면, 현재의 경비 회사들은 IT 기술을 적극 도입한 기술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해가는 중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들

올해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코로나19 감염병 유행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우리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언택트(Un-tact) 혹은 온택트(ON-tact)라 불리는 비접촉 온라인 서비스의 확산이며,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비즈니스 환경의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디지털 세상에서만 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예방 활동은 출입통제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이 출입자의 발열 체크와 방명록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는 출입통제와 경비 산업에 새로운 수요를 발생시켰다. 실제로 많은 CCTV 제조사들이 출입 관리와 발열 체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제품들을 선보이며 코로나19로 형성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민간 경비 업체들 역시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 갖가지 서비스를 개발해 선보이는 중이다. 국내 대표 보안기업 중 하나인 ADT캡스는 비접촉식 출입통제 시스템, 재택근무를 위한 근태 관리 서비스, 급증한 온라인 배송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한 새벽배송 무인경비 서비스 등을 선보인 바 있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맞이해 변화를 강요받는 상황이, 역설적이게도 민간 경비 산업의 진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ADT캡스의 새로운 출입통제 솔루션 (사진: ADT캡스)
ADT캡스의 새로운 출입통제 솔루션 (사진: ADT캡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