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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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 두렵다
  • 박지성 기자
  • 승인 2017.12.20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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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블록체인과 의혹의 암호화폐

[CCTV News=박지성 기자] 블록체인은 구성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정보 공유를 핵심 가치로 한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암호화폐가 탄생했다. 그러나 최근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 시장은 블록체인이 최초에 추구하던 가치와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7년 12월 현재,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은 상승을거듭하여 약 638조 원으로, ‘18년 대한민국 국가 예산 430조보다도 약 200조원이 더 많다. 그러나 블록체인 업계의 반응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최근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자율 규제안 발표 등자정 노력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과열이 블록체인이 주창하고 있는 가치와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자칫 블록체인 잠재적 가치가 곡해될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1. 버블 붕괴의 대안이 되고자 했으나, 스스로 버블이 되어가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경제는 얼어 붙었다.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경제 위축을 불러 왔고 저성장을 일상화시켰다. 그리고 그 이듬해, ‘나카모토 사토시’란 신원 불명의 프로그래머는 이런 버블 붕괴의 대안이 될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중앙화된 금융기관(소수의 중앙은행과 대형 투자은행)의 독단적 통화정책이 비극의 근본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중앙 통제될 수 없으며, 참여 구성원들의 신뢰가 바탕이 되는 화폐, 비트코인은 그렇게 세상에 소개됐다.

▲ 그래프 1]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 추이

그러나, 최근 버블 붕괴의 대안으로 출발했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그 스스로 버블이 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2010년 비트코인은 채 1달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12월 현재 17,000불을 돌파했다. 블록체인과 새로운 경제 체계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가파르다. 출처조차 불분명한 루머에 시장이 들썩이고, 심지어 해당 암호화폐의 사업계획서라고 할 수 있는 ‘백서’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묻지마 식 투자가 횡행하고 있다. 가격은 급등락을 반복하고, 투자자들은 혼란스럽다. 주식 시장은 급격한 주가 상승/하락이 발생할 경우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가 발동된다. 급격한 가격 변동 발생 시 장을 일시적으로 중지 시키고, 합리적 판단의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은 멈출 수가 없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다수’에 의해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군중심리가 작용할 때, ‘다수’의 구성원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여지가 충분하다. 버블의 대안이 되려고 했던 비트코인이 이제 스스로 버블이 돼가는 역설적 상황이다.

2. 평등과 분산을 추구했으나, 불평등, 중앙화를 심화하고 있다.

분산원장기술이라는 블록체인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분산’은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의 부의 지형은 분산과는 거리가 멀다. 17년 9월 기준, 비트코인 전문 사이트, 비트코인프라이버시(Bitcoinprivacy)에 따르면, 비트코인 보유 계정의 약 4%가 전체 시가총액의 96%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계층을 세분화 해 보면, 부의 쏠림 현상은 더욱 뚜렷하다. 상위 1%가 전체 비트코인의 88.6%를 차지하고 있다. 약 1300만개에 달하는 하위 계정은 전체 비트코인의 가치 중 고작 3%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불평등의 심각성은 실물경제와 비교될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은 최근 사상 최악의 소득 불균형으로 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 실물경제에서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전체 부의 약 21%를 차지한다. 비트코인의 상위 집중도는 이런 미국에 비해 약 4배에 달한다.

▲ 그래프 2] 비트코인과 미국 실물경제 부의 집중도 비교

나카모토 사토시는 분산을 지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기술적 토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한가지 있다.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다. 그 결과 지금 이 순간에도 비트코인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불평등은 심화되는 역설이 진행 중이다.

3. 이익의 일치를 추구했으나, 이익 불일치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17년 10월에 서울, 블록체인 산업혁신 컨퍼런스(BIIC)가 열렸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블록체인 혁명”의 저자 돈 탭스콧 박사는 강연 말미에 찌르레기의 군무를 보여주었다. 찌르레기들은 자신 보다 몸집이 25배나 큰 침입자 매에 대항하여 질서 정연하게 단체로 반격을 가했다. 이 장면을 보며 돈 탭스콧 박사는 블록체인의 철학을 역설했다.

“남들도 나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을 때 조직은 강해진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나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일치될 때 생겨난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런 믿음에 기반한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정반대다. 금융 시장에서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암호화폐 보유를 통한 수익 실현을 위해서는 매도가 필요하다. 매도 이후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매도자 본인은 다행히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 다른 누군가의 지나친 프리미엄 지급, 곧 손실이 된다. 매도 이후 가격이 상승해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엔, 향후 기대수익을 상실한 판매자 본인이 손실을 입게 된다. (물론 목표 투자수익률을 달성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심리적 손실감은 자주 합리적 판단을 압도한다.)

블록체인은 나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일치할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은 상호 대립되는 이익들을 통해 수익을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실현된 수익이 커질수록, 암호화폐 시장은 성장한다.

▲ 사진 1] 두 얼굴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그리스 신화의 야누스

4. 암호의 이중성, 선택과 활용은 우리의 몫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모두 암호학(Cryptology)을 기반으로 한다. 암호는 이중성을 갖는다. 아군 간에는 강력한 신뢰의 상징이지만, 적군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이런 암호학의 이중성 때문일까? 블록체인은 신뢰의 기계라 불리는 반면, 암호화폐는 최근 의혹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굉장히 광범위한 영역의 한 일부일 뿐이다. 암호화폐 시장 과열에서 촉발된 부정적 면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투명성과 신뢰라는 가치를 실현할 것인지는 오로지 우리의 선택과 활용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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