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또 무용지물 된 전자발찌, ‘훼손 알림’ 울려도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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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또 무용지물 된 전자발찌, ‘훼손 알림’ 울려도 속수무책
  • 전유진 기자
  • 승인 2021.09.02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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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등 사각지대 줄이는 제도 개선 필요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전자발찌(위치 추적 전자장치)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56) 씨는 이같이 말했다. 강 씨는 8월 26일 밤 자택에서 4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이튿날 오후 5시 반쯤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거리에서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했다. 이후 같은 달 29일 새벽에도 서울 송파구의 한 주차장에서 50대 여성 1명을 살해하는 등 또다시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강 씨는 충남 천안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전자발찌를 차고 법무부의 관리를 받고 있었지만, 강 씨가 여성 2명을 살해하는 동안 전자발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계속되는 전자발찌 실효성 논란


전자발찌는 전자감독 제도에서 사용되는 전자장치로, 전자적 기술을 이용해 범죄자를 감독한다. 특히, 재범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의 발목에 전자장치를 부착해 24시간 대상자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통해 재범을 방지한다.

전자발찌에는 GPS와 본체 및 스트랩 훼손을 감지하는 센서가 내장돼 있어 만약 전자발찌를 신체에서 임의로 분리하거나 손상시킬 경우 훼손 알림이 울리게 된다. 강 씨가 전자발찌를 훼손할 당시에도 센서가 작동해 훼손 알림이 울렸으나, 법무부 직원들과 경찰은 이날 오후 강 씨의 집 앞을 찾아갔을 뿐 집 안을 확인하지 않고 돌아갔다.

법무부는 집 안을 수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체포 영장이 (법원에서) 발부되지 않아서”라고 밝혔지만, 당시 체포 영장은 접수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동부지법에 따르면 강 씨에 대한 체포 영장은 강 씨가 도주한 지 20시간이 지난 8월 28일 오후 2시에야 접수됐다.

 

전자발찌 5차례 추가 개선에도 올해만 13명 끊어


법무부는 8월 30일 브리핑을 열고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전자감독 대상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전자발찌 견고성을 추가 개선하는 등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강 씨가 전자발찌를 훼손하기 전 두 번이나 새벽 외출 위반 등 이상 징후를 보였음에도 보호관찰소 범죄 예방팀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드러나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전자발찌는 2008년 도입 후 다섯 차례 기능이 개선됐다. 기존 우레탄 재질이었던 전자발찌는 이후 띠 안에 스테인리스 스틸과 금속 철판을 넣었다가 지난해부터는 훼손을 더욱 어렵게 하기 위해 긴 철판 대신 얇은 철판 7개로 바꿨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강 씨도 최근 버전의 전자발찌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전자발찌만 강하게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는 더 강한 절단기를 찾게 되면 그만이다. 단선적인 대안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자발찌 훼손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법무부 현황을 보면 제도 시행 이듬해인 2009년, 1명에 불과했던 전자발찌 훼손자는 2019년에는 23명까지 늘어났다. 올해도 지금까지 13명이 전자발찌를 훼손했는데 이 중 2명은 전자발찌를 끊고 잠적해 아직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발찌 훼손 현황 (출처: 법무부)

전자발찌 관리 감독에 대한 문제도 언급됐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전자감독 관리 인력 증가세는 더딘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2016년 2696명에서 2021년 지금까지 4847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이를 관리하는 감독자는 141명에서 281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감독자 1인당 전자발찌 착용자 17.3명을 관리하는 셈이다.

전자감독 대상자 및 인력 현황 (출처: 법무부)

또한 지난 5년간 전자발찌 착용자 재범 건수는 총 303건에 달하는데 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거주지 1㎞ 이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 ‘전자발찌를 착용했더라도 집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속수무책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이에 대해 곽 교수는 “전자발찌는 위치를 추적할 순 있지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 잠재적 범죄자가 위치 추적 사실을 알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을 기대할 순 있으나, 범행 의지가 강한 일부 사람까지 막을 순 없다”고 지적했다.

 

튼튼한 전자발찌 아닌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


전자발찌를 끊고 연쇄살인을 한 강 씨가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가운데, 또 다른 성범죄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야산으로 도주해 경찰이 공개 수사에 나섰다. 해당 성범죄 전과자는 8월 21일 전자발찌를 끊어 도로가에 버리고 잠적해 아직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전자발찌가 훼손됐을 경우 신속한 검거를 위해 경찰과의 공조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훼손 초기 대응 과정에서 협력하고 대상자 범죄 전력 등의 정보 공유를 확대하며 위치 정보를 공동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안 등을 경찰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현재 서울 25개 구 가운데 CCTV와 위치 추적 정보를 연계해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곳은 11개 구에 불과하다. 다른 구에서는 위반 사항이 발생하면 보호관찰소에서 지자체별 관제센터를 방문해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전자발찌를 끊은 즉시 인근 CCTV 등으로 위치를 파악해 초기에 검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단 주장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강 씨가 범행을 저지른 송파구는 실시간 조회가 불가능한 지자체 중 한 곳으로, 법무부는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연계를 완료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전자발찌를 끊지 않고서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곽 교수는 “전자발찌 견고성을 개선하는 것보다도 수용 상태에서 성범죄자를 제대로 치료한 뒤 석방하고 전자발찌 등 시스템이 보완적으로 재범을 억제하는 게 이상적이다. 근본적으로 범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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