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석현 | 리얼티뱅크신사업전략부문 대표, 스마트도시블록체인포럼(SBF) 기술위원장]
사이버 가수 '아담'과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세기말 닷컴 버블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국내에서는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이 출현했다. 아담은 당시 정규 앨범을 출시하고 뮤직비디오와 CF에도 출연하며 대중들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었다. 아담은 한때 최첨단의 기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차츰 멀어지며 발전하는 시대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 탄생한 이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 ‘20세 여대생’으로 설정된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최근 가입자 40만 명을 넘어서는 등 10대와 20대 사용자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루다는 성희롱과 혐오 및 차별에 관한 부적절한 대화 그리고 개인정보 무단 사용 논란 등으로 서비스 개시 20여 일만에 운영을 잠정 중단하게 됐다.
이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루다는 딥러닝을 기반으로 사용자와의 대화를 학습하는 방식의 인공지능 챗봇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Garbage In, Garbage Out) 프로그래밍의 기초 이론처럼 잘못 학습된 데이터는 결국 편향되고 잘못된 응답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 전문가는 분석 설계 시점부터 수면 아래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동시에 서비스 사용자의 윤리적, 사회적 측면까지 고려한 합의 과정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인식되고 있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그리고 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은 이미 빠른 속도로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현실 세계를 크게 바꿀 것은 분명하지만, 사용자에 대한 깊은 통찰과 시장 참여자들과의 합의 프로세스가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산업에서의 디지털 전환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사용자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가 함께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부동산 영역에서는 왜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가?
국토교통부에서는 부동산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지난달 부동산 서비스 산업 1차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신뢰받는 부동산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프롭테크 신산업 진흥과 부동산 데이터 경제 기반 마련 등 13개 중점 과제를 제시했다.
부동산 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곳곳에서 변화가 차분히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화와 플랫폼의 영향력이 점점 더 강화됨에 따라 프롭테크 기업들은 더욱 주목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프롭테크 기업들은 실시간 자산 평가, 빌딩 최적화, 거래, 고객 데이터 분석 등을 중심으로 이미 부동산 산업의 거의 모든 가치 사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왜 부동산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지에 대해 몇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임차인과 주택 구매자의 검색 방식 변화
기술적인 촉발 요인(Technology push) 외에 시장의 수요(Market pull) 관점에 살펴보자면, 우선 사용자, 특히 임차인과 주택 구매자들의 검색 방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하며 발품을 팔아 집을 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구매자들이 네이버부동산, 직방, 다방, 피터팬 등의 디지털 채널을 통해 매물을 검색하고 조건을 비교한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채널(옴니채널: Omni Channel)을 통해 온라인 쇼핑하는 것처럼 콘텐츠를 소비하고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검색 방식의 변화는 고객이 기술에 접근하는 접점으로서 플랫폼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2. 판매자와 구매자 연결 플랫폼 확대
부동산을 판매하거나 임대하려는 사용자와 구매 또는 임차하려는 사용자를 직접 연결시켜 주는 플랫폼들이 성장하고 있다. 직거래 카페에서 시작된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라는 서비스는 이미 많은 사용자들이 찾는 부동산 직거래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집 내놓을 때 중개 수수료 무료를 표방하고 있는 다윈중개 역시 제살 깎아 먹기라는 논란 속에서도 꾸준히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플랫폼화(Plaformification)는 사용자가 부동산을 단순히 검색하는 수준을 넘어 전자계약과 비대면 부동산 금융 서비스, 입주 후 사후 서비스 등의 고객 여정의 전 단계로 점차 범위를 넓혀 나갈 것이다.
3. 정보 연관성과 즉시성에 대한 사용자 요구 증가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는 2021년 주목해야할 금융 시장의 7개 진화 방향 중 하나로 데이터가 제공하는 고객 맥락 이해 기반의 고객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컨텍스트(Context; 문맥)란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주변 상황, 시간, 환경 등 심층적인 의미를 파악할 때 고려되는 부분을 의미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주변 상황과 숨겨진 욕구를 충족하는 적절한 콘텐츠 제공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될 것이며, 이러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사용자의 의사결정에 더욱더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부동산 거래에서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교통 환경, 보육 환경, 교육 여건, 도시 행정 편이, 문화 환경, 에코 환경 등 다양한 주변 환경에 대한 데이터는 사용자와 연관된 콘텐츠를 이해하고 분석할 때 반드시 함께 고려되어야 할 요인이다.
4. 인구 변화와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요구 확대
한국 사회의 인구 변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사용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부동산 산업에서도 변화를 촉진하는 큰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소비 행태의 온라인화가 가속화되면서 영화, 음식점, 놀이공원 등의 오프라인 기업들은 점점 더 매출이 감소하고 있으며, 플랫폼화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환경 속에서 2021년에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업들의 온라인 서비스 투자, 건설사와 금융사 등의 프롭테크 기업 투자 등이 더욱 늘어나고 기업 간 인수 합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당분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업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치열한 합종연횡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디지털 혁신을 위한 데이터 공유 경제 기반 필요
앞서 ‘이루다’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데이터는 그 자체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을 위해 사용자 맥락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이 필요하다. 부동산 데이터는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신산업 분야에서 매우 소중한 미래 자원이다. 정부에서도 국가공간정보포털을 통해 방대한 오픈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공간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등을 통해 다양한 의사 결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부동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데이터는 공간정보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와 같이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되어 중앙 집중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블록체인(Federated Blockchain) 등의 신기술을 도입해 탈중앙화된 형태로 노드 간에 자유롭게 데이터를 연계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독일의 제안으로 데이터 연합 형태의 GAIA-X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데이터 주권 및 관련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목적으로 데이터 인프라 구축과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IT 강국으로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더 늦지 않게 부동산 데이터 생태계 참여자들이 탈중앙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고 모으고 소통 및 협력할 수 있는 ‘부동산 분야 오픈 데이터 프로토콜 경제 모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