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범죄 이제는 한때, 그 많던 소매치기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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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범죄 이제는 한때, 그 많던 소매치기는 어디로 갔을까?
  • 전유진 기자
  • 승인 2021.01.1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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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에 따른 범죄 유형의 변천사

1980년대 초 부유층 집을 털어 물건을 훔친 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이가 있다. 한때 대도로 불리던 조세형(83)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조 씨는 여러 차례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과 출소를 반복하다가 2019년 서울에 한 다세대 주택에 침입해 현금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경찰에 16번째 붙잡히게 된다. 항소심 재판 최후 변론에서 조 씨는 “젊을 때는 어리석어 오로지 절도만이 생계유지 수단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CCTV가 발달해 예전 행태로는 범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쇠락하는 소매치기 범죄

소매치기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때 소매치기의 전성기라 불리던 1980년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 서울의 한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하루 40~50건의 소매치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백화점과 전철역, 버스 안에서 호시탐탐 사람들의 지갑을 노리던 소매치기범들을 쉽사리 마주할 수 없게 됐다. 그 많던 소매치기 범죄는 왜 줄어들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소매치기가 줄어든 요인으로 제일 먼저 신용카드의 발달을 꼽았다. 2000년대 들어 현금 대신 카드 사용이 일반화됐고, 이제는 스마트폰이 지갑의 기능을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사람이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됐다. 이로 인해 소매치기범들의 범죄 기회가 줄어들었고, 자칫 도난 카드를 사용했다간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 높은 위험성을 감수할 만큼의 이득이 사라지게 됐다.

CCTV의 보급 확대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절도범 조세형이 재판에서 언급했듯 버스나 지하철을 비롯해 도심 곳곳에 설치된 CCTV로 인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CCTV로 소매치기 범행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범행 후 소매치기범의 도주로를 파악할 수 있어 과거보다 경찰들이 범죄자를 검거하기 쉬워졌다. 바꿔 말해 소매치기범들은 경찰에게 발각될 우려가 커진 것이다.

과학수사의 발전도 소매치기 범죄가 줄어드는 데 한몫했다. 한 전문가는 “DNA를 비롯해 손바닥 지문, 냄새, 걸음걸이, 혈흔 등 다양한 흔적들로 범인을 특정하는 수준까지 과학 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강력 범죄 가해자에 대한 검거율이 높아졌고 이것이 보안 시설의 보편화와 함께 범죄 예방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이제 범죄도 언택트 시대’

사회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소매치기 범죄는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도·절도와 폭력, 교통 범죄 등 전통적 범죄는 감소하는 반면 인터넷을 이용한 `비대면(언택트)형 범죄`는 증가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경고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의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거나,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뤄 지나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거액을 낚아채는 등의 범죄가 성행했다. 그러나 요즘은 주거침입 범죄와 절도 등의 범죄가 감소하는 대신 경제적 이득이 큰 신종 디지털 범죄가 활개를 치는 실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수치로 확연히 드러난다. 통계청 범죄 통계 분석 결과 빈집 절도는 2011년 3만4957건에서 2019년 6394건으로, 소매치기 절도는 2011년 2381건에서 2019년 534건으로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9년 새 빈집 절도는 81%, 소매치기 절도는 77%나 급감한 셈이다.

 

절도 범죄 발생 건수(출처: 통계청)

반면 지능 범죄 전체 발생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치안전망 2021`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지능 범죄 전체 발생 건수는 31만 5206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8%가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조직원들의 활동이 제한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 건은 16.7% 줄어들었지만, 메신저 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14.6% 늘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의 경우 콜센터를 활용해야 하나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대응과 감염 위험 우려로 운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며, 대신 그 위험이 적은 메신저피싱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메신저피싱은 아이디를 도용해 전화가 아닌 카카오톡·페이스북에 접속한 뒤 지인·가족이라고 속여 돈을 요구해 챙기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는 방식이 아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돈을 입금받는 비대면 범죄다.

또한, 전년 동기 4배 가까이 피해 건수가 늘어난 스미싱은 악성 앱 주소가 포함된 메시지를 전송 후 이용자가 악성 앱을 설치하거나 전화하도록 유도해 금융정보·개인정보 등을 탈취하는 범죄다. 스미싱 문자에 포함된 링크를 피해자가 클릭하면, 피해자의 스마트 폰에 악성코드가 설치되거나 악성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결과적으로 범죄자가 해당 스마트폰에서 기기 정보, 연락처, 통화 기록, 설치 앱 목록, 위치 정보 등 개인정보 또는 금융정보를 탈취할 수 있게 된다.

메신저피싱, 스미싱과 같은 비대면 금융 사기 범죄가 점차 인기를 얻는 이유는 소매치기처럼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대면 범죄와 다르게 상대적으로 발각 위험이 적고, 노력 대비 얻는 돈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범죄 수법이 고도화돼 이를 악용한 범죄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지능화되는 사이버 범죄

코로나 사칭 스미싱 예시(출처: 한국인터넷진흥원)

코로나19로 비대면 업무 처리가 일상화됨에 따라, 피싱 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지원하는 재난지원금과 정부 지원 대출을 빙자해 현금 인출이나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피싱, 지자체나 질병관리본부 등에서 코로나 관리를 위해 발송하는 문자와 유사한 내용으로 피해자를 속이는 스미싱처럼 코로나 사태를 악용하는 새로운 수법의 지능 범죄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를 이용한 지능 범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딥러닝, 음성인식, 영상인식 기술 등을 기반으로 한 AI의 발달은 범죄자들에게 추가적인 범죄 수단을 제공한다. AI 기반 기술들을 악용하는 사례들은 이미 등장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한 에너지 회사 최고경영자는 AI로 독일 거래 회사의 최고 경영자의 목소리를 변조한 송금 요청 전화를 받고, €220,000을 송금한 바 있다. 또한, 피싱 사기 범죄자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이용자들을 표적으로 스미싱 메시지를 전송한 사례도 있다. 딥러닝과 자연어 처리 기술을 사용하는 AI가 SNS 이용자들의 프로필과 게시한 글을 대량으로 수집·분석해 각 이용자에게 특화된 메시지를 발송하면, 이용자들은 의심하지 않고 스미싱 메시지 안에 포함된 악성파일이나 앱으로 연결되는 링크를 클릭하게 된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기만하기 위한 새로운 수법이 개발되기에, 범죄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법집행기관의 새로운 범죄에 대한 사전적 예측의 한계로 인해 이미 일어난 범죄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범죄에 사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내 범죄 대책은 바뀐 범죄 양상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 그제서야 뒤쫓아가는 형국이라고 꼬집으면서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범죄 양상에 대처하기 위해선 치안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의 정보 역량을 범죄 트렌드 분석, 범죄자들의 동향 분석에 집중해야 비로소 정보 중심의 치안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선제, 공격적 범죄 대책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에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의 여지가 있는 만큼, 새로운 수법의 피싱이나 스미싱 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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